제목 그대로다. 도둑이 우리집에 왔다. 사건인즉 -
3월 14일 목요일 오전 - 나는 홈 오피스에서 한창 간밤에 온 이메일을 읽던 중이었고, 배우자는 현관 바로 앞에 있는 라운지의 쇼파에 드러누워 (아마)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있던 때였다.
우리집 현관문에는 - RING 이라는 - 도어벨 알람이 설치되어있다. RING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 본사가 있는 홈 시큐어리티 시스템으로 - 도어벨에 센서가 있어서, 누군가 가까이오면 자동으로 카메라가 켜지고, 녹화가 시작되며, 집 주인이 집에 있든 없든간에, 핸드폰을 통해서 자동으로 알림이 온다. 그 방문자가 도어벨을 누르면 - 집 주인은 핸드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통해서 항상 집에 있는 것(?)처럼 이 방문자에게 대답을 할 수 있다.
2016년 RING은 LA 경찰과 협력하여, 캘리포니아의 윌셔파크 (Wilshire Park) 지역의 10% 정도의 가정에 RING VIDEO DOORBELL 시스템을 장착했는데, 그 후 6개월간 이 지역의 무단 침임 (break-ins)이 무려 55% 감소했다고 한다.
이 회사 RING (Doorbot이란 이름으로 시작했었음) 은 2012년에 설립되었다. 그 후 크라우드 펀딩을 포함한 이런저런 투자들을 활발히 받고, 제품도 잘 론칭하고 승승장구 하다가, 2018년 2월에 아마존에 인수되었다. 즉, 대단히 성공적인... 회사다.
아무튼 - 아직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우리 부부는 각자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아침 9시 22분에 현관문에서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사무실용 방에 있던 나는 - 현관쪽에서 어렴풋이 말소리가 나길래, 누가 왔나보다. 누구지?? 또 여호와의 증인 믿으라고 설득하려는 분이 왔나.. ??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 어라? 배우자 목소리가 점점 흥분하고 커지네?? 그리고 "DO YOU HAVE AN ID" 하더니 "GET OUT OF MY HOUSE" 라는 고함이 들린다. 황급히 현관으로 달려가니 흥분한 배우자가 낯선 젊은 남자를 마구 현관 밖으로 밀치는 중이다. 이 젊은 남자가 들고 있던 책(?)으로 보이는 것도 어느 새 배우자 손에 쥐어져 있더니, 이 남자가 어눌한 영어로 돌려달라고 하자 배우자가 과격하게 던지며, 우리 집에서 당장 꺼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 나는 처음에 배우자가 불쌍한 젊은 남자를 이유없이 과격하게 대하고 있는 걸로 착각했었다. -
이 남자가 우리집 드라이브 웨이에서 사라지고 나서, 무슨 일이냐고 배우자에게 물었더니 - 자기는 RING 도어벨 알람 소리가 들리길래, 처음엔 내가 밖에서 정원으로 왔다갔다 하는줄로 생각하고 신경을 안쓰고 있었단다. 그러다 현관문 방충망이 열리고, 현관문이 열리더니, 처음 보는 이 낯선 남자가 집으로 들어오려다가, 자기랑 눈이 딱 마주 쳤단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 "Is there Jack?" 이라고 듣도보도 못한 사람을 찾더란다.
재차 여기 왜 왔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청소부라고 대답을 하더란다. 청소부라면 현관문에 있는 도어벨을 누르는게 상식인데, 이 사람은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 청소하러 온 사람 옷이랑은 거리가 멀다. 우리집은 청소 서비스를 받는 집도 아니다. 뭐가 안맞다.
그래서 배우자는 이 남자한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다른 집에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러 가는 사람이라면, 신분증을 들고 다니는게 상식일테니까. 그런데 이 남자는 자긴 신분증이 없다고 하더란다.
직관력 하나는 좋은 배우자는 - 딱 감이 오더란다. "이 사람 도둑이구나" 하고 말이다. 최근에 브리즈번의 인두루필린가 어딘가에 - 집에 사람있는 데도 불구하고 도둑이 든 경우가 보고되었고, 도둑이 집에 있는 사람에게 연연하지 않고, 도둑을 저지하려는 집주인을 가볍게 무시하고, 유유히 물건을 훔쳐서 달아난 사례가 있었다고 들었기에, 이 사람을 무조건 집 밖으로 내보내야 된다 싶었단다. 그리고 당장 집 안으로 들어오려다 딱 걸린 사람은 한 명이지만 - 근처에 한두명이 더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과격하게 이 사람을 집 밖으로 밀치고, 혹시라도 옆 집에 누가 있으면 들을 수 있게 엄청 크게 소리르 고래고래 질렀다고 했다.
비 영어권 출신인듯,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던 이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하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설렁설렁 사라졌다.
<RING에 찍힌 도둑으로 의심되는 남자>
이 남자가 사라지자 마자, 배우자는 옆 집 Gloria에게 수상한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갔으니, 문 단속 철저히 하고 조심하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서 수상한 사람이 우리 집에 침입하려고 했다고 신고를 했다. (호주에서 긴급전화는 000 으로 하면 됩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지문을 채취할 수 있는 과학수사관 (forensic)을 보내겠다고 하더니, 그리고는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특수 장비들을 가진 경찰관이 와서, 현관에 있는 지문들을 채취했다.
한 명은 지문을 채취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우리 집이 있는 거리를 순찰하고, 이웃들을 차례로 방문해서 혹시 수상한 사람을 본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한 이웃이, 수상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우리집 드라이브웨이 끝에서 담배 피우는걸 봤다고 했다.
흡연률이 매우 낮은 호주에서, 주택가 길거리에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기란 매우 드문 일이고, 오토바이 몰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고, 우리 동네에, 특히나 우리집이 있는 골목에 낯선 사람이 오는 일은 매우매우 드문 일이다.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끝에 있고, 거기에서는 각각의 집으로 뻗어있는 4개의 드라이브웨이가 있다. 아마 이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어느 집으로 침입해 볼까 탐색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각도때문에 멀리서는 드라이브웨이에 누가 지나가는지 잘 안보이는 우리집이랑, Kiera네 집이 타겟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Kiera네 집에는 사나운 개 (거의 사냥개) 두 마리가 있으니, 거기는 포기하고, 우리 집을 선택했으리라.
탐문 수사를 마친 경찰말로는 아마 약물로 정신이 약간 혼미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려고 시도한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배우자가 현관 바로 앞 소파에 드러누워 밍기적거리고 있던 때라 - 이 침입자가 들어오자마자, 집에서 몰아냈고, 도둑맞은 물건은 없지만, 앞으로는 집에 있을 때도, 방충망을 포함해서 문이란 문은 꼭 잠금장치를 잠궈두어야겠다.
오늘 만난 지인분 말로는 - 요즘 도둑들은 집에 사람이 있을 때 오는걸 더 선호하기도 한단다. 집에 사람이 있어야 지갑이 집에 있고, 그래야 훔쳐갈 현금이 많기때문이란다. 무서운 세상이다.
'호주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품 경매에 참여하다 (0) | 2019.04.08 |
---|---|
시간이 잘도 간다 (0) | 2019.04.06 |
늙어가는 부모님을 지켜보는 것 (3) | 2019.03.29 |
생일선물 아이디어 (6) | 2019.03.14 |
연이은 해외출장 - 신나지 않는다 (2) | 2019.03.08 |
호주 이민에 관심이 있다면 (2) | 2019.03.02 |
감기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 (2) | 2019.0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