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CRA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시드니 사는 내게 주어진 사이트는 절반 넘게 멜버른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하여 2013년 1월부터 2014년 하반기에 회사를 옮길 때까지 아주 자주 멜버른에 왔었다. 거의 매주 오기도 했고, 일주일에 세번씩 멜버른행 비행기를 타기도 했고, 일주일 내내 멜버른에 머무르기도 했었다. 집이 시드니가 아니라 멜버른이면 더 낫지 않을꺼 싶을 정도였다.
멜버른은 시드니와 맞먹는 호주의 대표 도시다. 호주의 수도가 시드니가 아니라 캔버라인 것은 다름 아니라 시드니랑 멜버른이 거의 비슷한 인구와 경제력을 자랑하기때문이다. 즉 시드니나 멜버른 중 한 곳을 수도로 정하기엔 그 인구나 경제력이 너무 막상 막하라 한 곳을 수도을 정해서 다른 한 도시가 불평을 갖게 하는 대신 중간에 끼어있는 캔버라를 수도로 세운 것이다.
사진의 출처: 여기
호주에서 유럽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도시로 멜버른과 퍼스를 꼽는데 - 퍼스는 너무나 조용한거 같고... 호주의 모든 도시들에서 뚜욱 떨어져 있는 반면, 멜버른은 남쪽끝에 있을 지언정 인구가 많아서 북적거리고, 사람들도 트렌디하고, 쉬크하달까? 자유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호주의 다른 도시에 비해 멜버른이 앞도적으로 낫다 싶은 것은 다름 아닌 식도락과 패션이다. 시드니도 다문화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수 있다고 하지만- 헤스턴 블루만살 (Heston Blumenthal)이 호주 내 그의 레스토랑을 멜버른에 오픈했듯이, 대중의 입맛이나 전반적인 수준은 멜버른이 한 수 위라는게 내 생각이다. 가령 시드니의 대표 야채 과일 시장인 시드니 패디스 마켓이랑 멜버른의 빅토리아 마켓만 가봐도 사람들이 식재료를 다루는 자세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시장에 식재료가 진열된 모습이나, 구매자의 모습을 보면 그냥 단번에 차이가 느껴진다. 시드니의 야채 과일의 수준도 훌륭하지만- 멜버른에 가면 야채 과일이 삶의 주요 테마이자 축제처럼 느껴진다는게 내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어쩌면... 빅토리아 마켓에 맞먹는 시장이 시드니에는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유명 맛집의 수나,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 그리고 실제 음식의 맛이나 분위기를 보면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멜버른이 한참 위다. 특히나 중국 요리들은 - 멜버른에 중국인구가 많아서인지, 진짜 더 맛있다.
시드니와 멜버른 모두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인데 - 시드니보다 남극에 더 가까운 멜버른에 가면 이게 좀 더 많이 실감이 난다. 한여름에는 40도에 육박할정도로 낮기온이 올라갔다가 해가 지면 언제 그리 뜨거웠냐는듯이 20도 안팎으로 기온이 떨어지니 말이다. 어떤 날은 남극의 찬 공기가 비바람을 품고 매섭게 몰려오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쨍하고 햇볕이 나기도 한다.
이런 이유때문에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양하다. 낮에는 한여름 옷을 입고 있다가도 저녁이 되면 긴 팔 옷 - 간혹 코트나 패딩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멜버른 도심을 배회하다보면 사람들의 의상이 계절로 보나 트렌트나 스타일로 보나 정말로 제각각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뭘 입고 다녀도 - 자신감 충만!! 전혀 신경쓰이지가 않는다.
2007년에 여행으로 시드니와 멜버른에 각각 다녀간 이후에 나는 막연히 시드니보다는 멜버른에 정착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시드니도 아주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당시 내 눈에는 자유롭고 트렌디하게 다가오는 멜버른이 더 매력적이었기때문이다. 그러나 먹고 살자니... 2012년 당시 다니던 회사의 호주 지사 사무실이 있는 시드니로 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멜버른은 호주의 금융 예술 식도락 패션의 중심지라고 보면 될꺼 같다. 멜버른에서는 멜버른 지역 신문이지만 시드니 모닝헤럴드보다 좀 더 잘 씌여진 기사가 많은 The Age 신문이 발간된다. 이전에 골드 러쉬를 지나면서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었던 만큼 ANZ bank와 NAB의 본사도 멜버른에 있다. 여기에 더해 호주의 대표 연금회사인 Australia Super와 사보험 회사인 MediBank, BUPA (부파는 다국적 회사)도 멜버른에 본사가 있다.
금융은 아니지만 호주의 대표 회사인 Telstra나 BHP도 본사가 멜버른이다.
예술에서도 멜버른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데 - 가령 유명 화가의 순회 전시회가 호주에 오면 절반 이상은 멜버른으로 간다. 그런 점에서 멜버른 씨티에 있는 갤러리들의 수준은 호주 내 다른 어디보다 높다. 멜버른에선 해마다 패션 위크 축제도 상당히 크게 하는걸로 안다.
가수들의 콘서트도 마찬가지인데 - 아주 유명한 가수가 호주에 오면 대부분 멜버른에서 공연을 한다. 멜버른과 시드니를 동급으로 취급하거나 멜버른을 더 쳐주는거 같다. 그만큼 관객이 호응하기 때문이겠다.
그 외 모든 것은 시드니...라고 보면 될꺼 같다.
아... 참고로 호주에서 임상연구의 수도도 시드니가 아니라 멜버른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멜버른에는 의대가 있는 멜버른 대학교와 모나쉬 대학교를 주축으로 해서 Peter MacCallum Cancer Center, Monash University Hospital, Royal Melbourne Hospital, Austin Health, St Vincent Hospital, Alfred Hospital 등이 있고,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들도 간혹 만날 수 있다.
시드니에도 시드니 대학교와 UNSW를 주축으로 RPAH를 비롯하여 St Vincent, Westmead hospital 등 많은 병원이 있지만 명성으로만 따지면 어쩐지 멜버른이 좀 더 위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뛰어난 멜버른이지만 멜버른에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해변. 그렇다 멜버른에는 지척에 아름다운 해변이 없다. 그나마 이름을 댈만한 것은 세인트 킬다 해변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시드니의 여느 해변과 비교해보면 그냥 별.로.다. 그리고 세인트 킬다 해변 근처는 밤에 위험하고 수영하기에는 물도 아주 차갑다.
멜버른 사람들이 해변을 즐기려면 모닝톤 페닌슐라쪽으로 내려가야하는 것으로 안다. 모닝톤 페닌슐라는 아주 좋은 와인 생산지이자, 핫스프링(온천)이 있는 곳...
그런 멜버른에 오늘 당일치기 출장을 왔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근 사년 반만에 온 것이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하고보니 4-5년 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북적인다. 우버를 타고 (4-5년 전엔 우버가 없었다) 목적지로 향하는데- 전보다 더 심한 교통 체증이 느껴진다. 멜버른의 교통체증은 곳곳에 트램라인이 있어서인지 시드니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이동하는 중간중간 본 거리의 풍경은 낯이 익으면서도 달랐다. 곳곳에 독특한 외관의 새로운 건물들이 눈에 띄었고 공사가 진행중인 건물들도 많았다. 공항에나 거리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전보다 더 늘었다.
지난 몇 년간 멜버른의 인구가 급성장 했다더니 진짜 그 말이 맞나보다. 멜버른의 인구는 이미 시드니의 인구를 추월했거나 조만간 추월할 예정이라고 한다. ABC 기사에 따르면 2018년 말 멜버른의 인구는 4.9백만명으로 최근 1년간 인구가 2.7%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2050년에는 멜버른의 인구가 8백만에 육박할꺼라는 전망도 있다.
여전히 내 기억의 멜버른이면서도 더이상 내가 알던 멜버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멜버른이 변했기 때문일까. 혹은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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