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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일상생활

고장난 내 차, 그리고 낯선이의 친절

by 반짝이는강 2019.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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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차를 산건 2014년 초니까... 딱 5년을 몰고 다닌 셈이다. 그치만 6개월쯤 된 된 데모차를 산거니까 출고된지 6년인가... 제조년도는 2012년이니까 7년으로 봐야하나... 

동급의 여러 차종을 시승해보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i30. 난 내 i30가 진짜 마음에 든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주차하기도 편하고, 연비도 괜찮고 나한테 딱 맞다. 

그러던 내 i30가 어제 갑자기 고장이 났다. 집에서 멀지 않은 쇼핑센터에 주차를 하고 잠깐 마파두부를 만들 소스 (이금기표 Garlic and Chili sauce)를 사와서 집으로 오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 EPB (Engine Parking Brake)사인이 뜨면서 뒷바퀴가 꼼짝을 안해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수가 없었다. 시간은 6시를 향하고 있었다. 


배우자랑 둘이서 시동을 여러번 껐다키고 EPB 사인이 뜨면 어떻게 해야하나 구글검색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차창에 붙어있던 현대차의 iCare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상담원이 신속하게 케이스를 접수해서 24시간 출동서비스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선 이런게 당연하지만, 호주에 사는 나는 "오....... 호주에서 긴급출동 서비스가 되긴 되는구나" 싶었다. 호주는 사람이 하는건 모든게 비싸고 느린 나라라서 긴급출동 서비스... 이런거 기대하기 좀 힘들다.  


약 40분여가 지난 후 긴급출동 서비스 기사분이 도착했는데, 이래저래 점검을 해보더니 자기가 할 수 있는게 없다며 내일 아침 서비스 센터로 견인하라고 한다. OMG! 


아무래도 쇼핑센터 주차장에 밤새 차를 두는건 안전하지 않을뿐 아니라, 이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배우자가 차를 오늘 견인해 달라고 사정을 했더니, 어찌어찌 다시 견인접수가 되었다. 견인차는 앞으로 90분 이내에 올꺼라고 통보받았다. 시간은 이미 8시...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건 아니지만 - 멀쩡하던 차가 고장이 난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배우자는 아침에 수영장 펌프가 이상하게 멈춰서 있었다면서 뭔가 찜찜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보기에 나는 오늘 매우매우 심각하게 하루 종일 울상이라고 했다. 

배우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오늘 일진이 나쁜거 같아서 혹시나 싶어 오늘의 운세를 찾아봤다. 


​나의 오늘의 운세
의욕만을 믿고 먼저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의욕과 기운은 넘치지만 결과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운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강한 기운으로 오히려 큰 해가 될 수 있는 법입니다.일년 중 가장 좋지 않은 날 중의 하루입니다. 실수가 많고 짜증이 많이 납니다. 타인과 대립하거나 질책을 많이 받게 되는 날이니 어떤 일이든 자중해야 하는 시기네요. 재물의 흐름도 또한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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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 가장 좋지 않은 날 중 하나라고....? 혹시나 해서 배우자의 오늘의 운세도 봤더니 - 그도 오늘 화가 나는 날이라며 자중해야하는 날이란다... 견인차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우리 오늘 마가 낀 날이구나... 라며 둘이서 웃었다. 그래도 

1. 주차된 상태에서 차가 고장나서 아무도 안다쳤고

2.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고장이 났고 (오지에서 고장 났으면 어쩔뻔...)

3. 긴급출동 서비스도 40분 정도면 신속하게 왔고, 견인차도 오기로 했고 

4. 비가 오거나 뜨거운 대낮이 아니라서 차 안에서 견인차를 기다릴만 하고 

5. 저녁시간이라 쇼핑센터가 한가한 시간이라 긴급출동 서비스가 오나, 우리가 차를 요상하게 방치해놔도 아무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또....내가 혼자 일때 고장난게 아니라 배우자랑 같이 있을 때 사건이 발생해서 심적으로 든든했다. 다행이다. 


둘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차 안에서 멀뚱히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차 창으로 다가와서 말을 건다. 고장난 우리 차에서 약 20m 떨어진 피자집 직원인데, 아까부터 우릴 계속 보고 있었다며, 괜찮냐고,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저녁도 못먹고 배고플텐데, 자기네 가게에서 부담할테니 가게로 와서 피자를 먹으며 기다리란다. 

우린 아직도 브리즈번 새내기이고, 여기로 이사온지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그 피자집에 가본적도 없고, 거기에 피자가게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녀는 자리를 내어주며 - 어떤 피자를 만들어줄까, 좋아하는 토핑이나 싫어하는게 있느냐고 물었다. 반신반신하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갓 구운 따끈따끈한, gourmet pizza 한판을 내다주었다. 



배우자는 "I am very touched" 를 연발하며 어떻게 낯선 우리에게 이런 친절을 배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자기도 전에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에서 도움을 받은적이 있으니, 이렇게 베푸는 것이라고, 별 것 아니라며 활짝 웃으며 이야기 했다. 

그녀는 원래 뉴질랜드 태생인데, 8살에 어머니랑 영국의 요크셔 쪽으로 가서 살다가, 먼 친척이 호주에 있어서 우연찮게 21살에 호주로 왔는데, 여기가 마음에 들어서 12년째 살고 있고, 이 피자가게에서 12년째 일해왔다고 했다. 

그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9시가 되었다. 그녀가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고, 거의 떠날때쯤이 되자 마침내 견인차가 도착했다. 차량 번호판도 "ILL TOW U"다. 견인차에 이보다 완벽한 번호판이 어디있겠나! 

순식간에 내 I30는 이렇게 견인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사히 돌아와다오....


우리와 함께 끝까지 견인작업을 지켜본 그녀는 친절하게도 차가 없는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녀의 집은 우리 집이랑 정반대방향인걸 알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9시 40분경 싸이클론 Chloe 에서 딴 이름을 가진 Khloe는 그녀의 빨간색 Swift로 우리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어떻게 고마움을 표할까 하는 우리에게 - 다음에 우리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유유히 떠났다. 


남편은 브리즈번의 서쪽 동네로 이사오고 나서는 -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놀란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진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동네는 -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니, 나도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동네다. 

타국에서, 낯선이로부터 뜻밖의 친절을 받으니 - 그래도 호주가 살만하구나 싶은 생각, 그리고 브리즈번의 서쪽 동네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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