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뉴질랜드랑 영국에 다녀와서 그런지 3월은 한 번 만져보지도 않았는데 가버린 느낌이다.
영국에서 돌아와서는 - 한동안은 시차적응이 안되서 - 저녁 5-6시에 잠들었다가, 오밤중에 깨서 잠못들어하기를 꽤 여러 날 동안 했다. 저번 주말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새벽 2시쯤 깨서 - 버터랑 밀가루로 크러스트 만들기부터 시작해서 애플파이를 굽고 새벽 6시에 다시 잠들기도 했다. 이렇게 "from scratch"부터 애플파이 만든건 호주로 이민오기 전인 2012년쯤 해보고 처음인거 같다.
이번 주는 조금 나아져서 이제는 9시쯤 졸려하다가 아침 5-7시에 깬다. 한밤중 미팅들 때문에 보통 12시 넘어서 잠들어서 7-8시에 일어나는게 내 패턴인지라, 아침 5-7시에 일어나는건 대단히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3월에 배우자 부모님 댁에 갔을 때 - 배우자 아버지가 젊은 시절 중동과 유럽 이곳저곳으로 출장을 갔다 돌아올 때마다 하나씩 사다날랐을 냉장고 자석들을 - 그 중에 5개만 달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돌아와서 우리집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이런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배우자인데 - 별 말 하지 않는걸 보면 - 자기 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이 자석들은 예외인가보다.
호주는 바야흐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이때는 정원 가꾸기에 있어서 아주 바쁜 시기다. 지금부터 잔디 씨도 뿌려야 하고, 땅에 거름도 주고, 또 (아직 안했다면) 여름 작물들은 뽑아내고, 가을/겨울 작물들을 심거나 씨를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Rocklea market에 갔다가 허브 모종을 몇 개 샀더니 - 얼마 전에 새로 사다 심은 토마토 모종의 잎들을 밤사이 알수 없는 동물이 다 먹어치운 일도 있고 해서 - 배우자의 성화에 못이겨 - 버닝스에 가서 작물보호망 (Crop cage with netting) 을 사다가 쳤다. 그물망을 아래 사진처럼 칠 수 있는 지지대랑 그물망을 포함한 가격이 $54.97 이었는데, 이게 가장 경제적인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텃밭을 1x1m 2개에서 3 x 1m으로 넓히고, 이렇게 망까지 치고 나니 - 제법 그럴싸해보인다.
잔디용 흙을 주문하면서 같이 산 텃밭용 흙을 채워주었더니 - 지난 몇 달간 고추가 5개도 채 열리지 않아 나에게 싶은 실망감을 안겨주던 고추에서 드디어 꽃이 마구 피기 시작했다. 그 외에 파슬리, 생강, 오레가노, 코리앤도 (고수 혹은 실란트로), 타임도 잘 자라고 있다. 아... 코리앤도는 오늘 보니 뭔가가 잎을 갉아먹는 것 같아서 고춧가루 푼 물을 끼얹어주었는데 -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점점 심하게 밀려오고 있다. 나라고 뭐 그다지 뛰어나거나 똑똑한건 아니겠지만, 미국에 있는 본사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다보면 -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 자리에 있는걸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호주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혹은 못해도 - 지사의 직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씁쓸한건 어쩔수가 없다.
이번 해 들어서 무언가 전환이 필요했고 - 그래서 그간 피해오던 people management role 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월에 마침 people management role 이 오픈되었는데, 더이상 시드니가 아니라 브리즈번에 있기에 내심 포기해야하나 라고 생각하던 차에 공고 하단에 지역이랑은 상관이 없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지원을 했고 - 감기로 심하게 골골대면서 1차 및 2차 면접을 봤다.
2차 면접을 보고 나와 S가 같이 최종 후보로 올라갔는데 - 결론은 S가 됐다. S가 시드니에 살아서 일까? 내가 "안되었다"고 말을 하자마자 배우자는 내가 people manager가 안된게 다행이라는 이런 망언(?)을 퍼부었다.
안그래도 일 할 의욕을 상실한 요즘 - 목요일에는 마음이 답답해서 잠깐 집 앞에 나간다는게 맨발로 우리 집 길 끝까지 걸어갔다 돌아왔다. 그래봤자 왕복 3~400 m 정도였지만.
호주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수영장이나 해변은 당연히 맨발로 다니고.
수퍼마켓에 맨발로 다니는 사람.
시내 한복판에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
가끔 수영복 있고 맨발로 수퍼마켓이나 동네 언저리에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
그만큼 보행자가 다니는 길에 날키로운 물체나, 오물이 있을 확률이 낮다는거다.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여기저기서 종종 맨발 보행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호주의 캐주얼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 같기도 하다. 아 - 맨발 보행은 도심보다는 주택가 (특히 해변 근처 주택가)에, 시드니보다는 브리즈번에서 자주 보인다.
몇 일 전에는 혼자 장보러 갔다가 - Coles 에서 감자 10 kg이 단돈 $2 에 판매되는걸 발견했다. 세척되지 않은 감자라도 보통은 1 kg에 $2 정도 하는게 정상인데 - 이건 싸도 너무 싸다. 일단 사오기는 했는데 - 이 많은 감자로 뭘 하지? 뇨끼라도 만들어 봐야 하나?
감자 고로케, 감자칩, 오븐에 구운 감자, 도프앤누와 (Dauphinoise), potato mash, 감자 샐러드...고추장 감자찌개?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어쩌다 보니까 내가 저녁을 만들었다. 어제는 돼지고기 어깨 부위를 사다가 통째로 오븐에 구웠는데 -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이것처럼 맛있으면서 쉬운 요리도 없는 것 같다. 껍질이 바삭하게 구워졌는데 - 어제 교정 전문의를 만나고, 더 굵은 철사를 끼고 온 나는 이가 아파서 껍찔은 언감생심이다.
토요일인 오늘은 - 뉴팜 (New Farm)에 다녀왔다. 브리즈번에서 주택가격 비싸기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New Farm 과 Teneriffe 인데 - 트렌디한 부자동네답게 작은 가게며, 부띠크 샾들이 즐비한 도로도 있고, 브리즈번 강도 가깝다. 2010년에 관광객으로 왔을 때, 이 동네에 와서 인도 음식점에 갔었는데, 정작 브리즈번에 살면서는 오늘에야 오다니...
New Farm Farmers Market과 New Farm Park를 따라 길게 동네 산책을 했는데, 장이 서는 날이라 외부에서 몰려드는 사람이 많은 날이라 그랬는지, 주차공간을 찾아헤매이는 uptight 한 사람들과 붐비는 도로에 금방 지쳐버렸다. 요즘은 어딜가도 집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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