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주살이

두 번의 작별과 새로운 가족

by 반짝이는강 2019. 10. 28.
반응형

2019년 10월 10일 - 배우자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10월 21일에 배우자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5월에 만났을 때 배우자의 동생이랑 추측하기를, 누구든 간에 한 분이 돌아가시면 남은 분도 금새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빨리일꺼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다. 

배우자의 동생인 Richard의 말을 듣자니, Laura는 이번 해 하반기부터는 인지능력 및 기억력도 점차 감퇴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아버지 Wally가 사망하기 몇 일 전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이름을 기억해 내는데 애를 먹던 Laura는 Richard 에게 내 옆에서 잠자는 그 남자는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Richard는 Wally가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더이상 돌아올 수 없다고 설명을 해드렸단다. 

로라에게 그 말인 즉슨, 17살에 만나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 해 온 사람이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었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간에 제 한몸 아끼지 않고 자기를 애지중지하며 돌봐준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했다.

100%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며, 더이상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말 한마디 내뱉는 것조차 어려웠던 로라에게 Wally의 죽음은 더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놓아버렸나보다. 


배우자도 나도, 그리고 로라의 임종을 지켜본 리처드도 - 이런 상황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처음에는 오히려 더 담담했던 것 같다. 

로라의 사망소식을 들은 날 - 처음으로 배우자와 함께 오래도록 수십년 전에 배우자의 부모님이 찍어둔 홈비디오들을 봤다. 


나는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서서히 실감이 났고, 배우자는 그보다 좀 더 늦게 점차 실감이 났나보다. 

어떤 풍경을 보고는 - 배우자는 평소 같으면 아버지한테 보내드리기 위해 사진을 찍을텐데 - 더이상 그렇게 보여드릴 분이 없다는게 문득 떠오를 때마다 그 부재가 실감난다고 했다.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전해들고 몇 일 후 배우자는 꼼꼼히 집안 대청소를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슬픔이 묻어나왔다. 

어머니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배우자이지만 - 슬프거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 아주 대청소를 하는 것은 자기 어머니와 아주 똑같다. 

다들 괜찮으냐고 물어올 때마다, 자기는 괜찮다고 오히려 웃어보이기까지 했지만, 몇 일 후 그가 말했다.  

I am very sad.



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미가 달랐듯이, 두 분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도 서로 다르게 보인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 전쟁을 피해 시골로 보내졌을 때 장학금을 따낼 정도로 똑똑했던 로라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사회적 성공을 두 아들을 통해 이루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Wally가 쉴 틈없이 빽빽하게 다른 나라로 출장을 다니는 동안, 로라는 주말마다 리처드와 내 배우자를 데리고 런던에 있는 박물관과 갤러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고 했다.

지금도 내 배우자는 - 자기는 남들은 받지못한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그것은 순전히 자기 어머니 덕분이란다. 덧붙여 캐임브리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한 리처드의 논문 문법 첨삭을 로라가 직접 해주었다는 것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 잘은 모르지만 그녀의 그런 강렬한 열망과 노력이, 그녀와 내 배우자와의 관계를 복구가 불가능하게 틀어놓았던 것 같다. 


이번 해 3월에 영국에 갔을 때, 로라는 본인이 평생 수집해 온 목걸이며 귀걸이, 팔찌, 시계들이 담긴 보석함 상자를 내게 주며 가져가 달라고 부탁하셨었다. 집에 가져와서 보니, 언제쯤, 어디서 구입을 했다거나 누구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라며 하나하나 설명을 붙여놓으셨다.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로라에게 소중한 기억들이 담긴 것을 내게 선뜻 내어주신게, 나는 참... 슬펐었다. 


5월에 갔을 때는, Wally가 Laura에게 가보라기에 갔더니, Wally가 본인에게 청혼할 때 준, 그리고 지금까지 매일 껴왔던 engagement ring을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 그 반지가, 내게도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그 반지를 내게 주셨다.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 반지가 자신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로라의 말을 들은 Wally는 Laura에게 그 말을 다시 한 번 더 해보라며, 아픈 로라가 가엽고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이셨다.

  

지난 매 순간에도 그랬지만, 배우자의 부모님은 정말로 나를 예뻐해 주셨던 것 같다. 

두 분 모두 이제는 편안히 쉬시기를.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듯이 - 반가운 소식도 있다.  

어제 저녁 - 우리 어머니는 드디어 꿈꾸던 할머니가 되었고, 내 동생은 엄마가 되었고, 나는 이모가 되었고, 제부는 아빠가 되었고, 내 배우자는....이모부(?)가 되었다. 

솜이

​Welcome to the world!!

조카

아기들이 원래 이렇게 머리카락이 까맣고 길게 난 채로 태어나나? 아무리 봐도 나랑 닮은 구석은 안보이지만, 보면볼수록 신통방통하다. 

배우자의 부모님들도 - 내게 조카가 언제 태어나느냐며, 먼 가족이 생긴다고 좋아하셨었는데... 

앞으로 잘 부탁해, 조카야~~

반응형

'호주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 자리  (3) 2019.11.11
I am locked out -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오다  (3) 2019.11.08
할로윈  (2) 2019.10.31
Wally  (4) 2019.10.16
멜버른 나들이  (3) 2019.10.03
결혼기념일 - 벌써 12년  (6) 2019.09.24
오늘의 고민들  (3) 2019.09.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