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y는 배우자 아버지 이름이다.
Wally는 10월 29일이 되면 92세가 된다고 이번 해 초부터 줄곳 말씀해 오셨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
- 지난 해에 보낸 생일카드에 나이를 잘못적었나...
- 90번째 생일을 내가 너무 약소하게 챙겼나...
- 저번 생일 선물이 별로 마음에 안드셨나...
- 지난 해 생일카드랑 소포가 생일이 좀 많이 지나서 도착했지...
하는 그런 소심한 생각을 하며 약간의 찔림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0월 초 주말에 배우자 동생한테 다급하게 연락이 오더니 Wally가 쓰러졌다며, 부모님댁으로 막 출발한다고 했다.
그리곤 그날 저녁 Wally는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해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지난 3월이랑 5월에 내가 시부모님 댁에 갔을 때도, Wally는 이미 2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몇 번 구른적이 있었다. 3월에는 나를 기차역까지 바래다 주고는 -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는 갔는데, 차에서 꼼짝달싹을 할 수가 없어서 마당에 세워진 차 안에서 몇 시간째 앉아있다가 겨우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었다.
5월에 내가 갔을 때는- 침대 위에 누우려다가 그 자세에서 꼼짝달싹 할수가 없게 되어서, 한동안 부동자세로 있다가 내가 눕혀드린적이 있었다.
Wally는 전립선 암으로 진단 받은지가 근 10년이 되었고, 지난 5월에 갔을 때는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다고 했다. 지난 해던가 - 의사가 수술을 하자고 제안했었는데, 자기가 수술을 받게되면 혼자 있어야 할 와이프가 걱정이 되어서, 극구 수술은 안받겠다고 했다. 핑계는 자기 나이에 수술 받으러 들어갔다가, 못걸어나오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며 말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Wally와 Laura는 나를 아주 특별하게 대해주었다. 시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Laura는 본인 아들인 내 배우자랑은 정말 간단한 인사정도만 나누고, 나랑 항상 더 오래 통화를 하고는 했었다. 지금은... Laura가 산소호흡기를 끼고도 호흡이 가빠서 대화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시부모님과는 지난 해부터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Wally는 내 배우자에게 - Where is my girlfriend? 라며 나를 찾아서 반갑게 맞아주곤 하셨다. 그리고 내 배우자와의 전화끝에는 꼭 You look after that girl. God bless you two. 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Flag 수집 및 개양이 취미인 Wally는 - 우리가 결혼한 후 태극기를 장만해서, 내가 시부모님 댁에 가거나, 내 생일, 혹은 한국의 특별한 날이 되면, 집에 있는 국기 개양대에 이렇게 태극기를 날려주는 센스도 발휘해 주었다.
이번 해 초에 시부모님댁에 방문해서 Wally랑 몇 일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 하루는 나에게 자기의 첫사랑 이야길 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Doreen!
당시 몇 살이라고 하셨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첫사랑인 만큼 Wally는 Doreen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을텐데 - 어느날 Doreen이 Wally에게 "당신보다 더 나은 남자를 만나야겠다"라는 이유를 주며 Wally를 뻥 차버렸다고 했다. Doreen에게 채이고 자기는 집에 가서 엄청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 그 후 Doreen이 어찌됐는지 모르겠다는 걸로 이야길 마치셨다.
내 배우자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자기는 금시초문이라는걸로 봐서, 이 이야기는 아마 나에게만 하신게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주 늦게 결혼을 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그 외에도 Wally는 세일즈 맨으로 등대나 항만에서 사용하는 전구를 팔러 중동과 유럽을 다니던 이야기, 자신의 이직 이야기, 이웃들 이야기, 동네 부동산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배우자의 입심 및 약간의 허풍이 100% Wally에게서 온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Wally랑 Laura - 시부모님은 항상 참 다정해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근간에는 Wally의 무한한 사랑과, 노력과 헌신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지난 해에 Laura가 호흡곤란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배우자나, 배우자의 동생, 그리고 나도 Wally보다는 훨씬 나이가 적지만 호흡이 어려운 Laura가 먼저 죽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해 초까지만 해도 Wally는 앞으로 꽤 오래 더 살꺼라고 의욕에 차 있었는데, 이번 해 들어서는 그게 몇 년으로... 그리고 조금만 더에서 not too long 으로 점차 변해갔다.
내 생각에 Wally는 온종일 병상에 누워있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는 Laura가 가여워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가 돌봐줘야한다는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아침 저녁으로 carer가 온다지만, 까다로운 Laura를 돌보면서 본인은 Laura보다 더 급격하게 쇠약해져갔다.
...그러다가 이제는 Wally의 몸이 더이상은 버틸수 없게 되었다. Wally는 직전 주까지 운전을 하고, 몇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평소같이 통화를 했었다. 그런데, 입원을 하자마자, 병원에서는 4~5일 안에 사망하게 될테니 준비하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전해듣고는 우리도, Wally 본인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딱 그 정도 시간이 지난 10월 10일에 Wally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립선암의 종양이 커지면서 방광을 누르다, 결국 신장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고, 그로 인한 사망이었던 것 같다.
5월에 갔을 때 Wally는 차고에서 80년쯤 전에 자기 아버지가 자신를 위해 만들어준 나무로 된 공구함을 내게 보여주며 - 자기 아버지는 아주 좋은 아버지였다고 했다.
배우자도 그런다. Wally는 100만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한 - 자기가 필요로 할 때 항상 자기 편에 있어주었던, 최고의 아버지라고 말이다.
세상을 떠나기 몇 일 전 - 그때는 몰랐지만, 내 배우자랑은 마지막 통화에서 Wally가 랬다.
Thank you for being my son.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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