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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여행 그리고 미식 노트

호주의 봄 - 자카란다 꽃구경

by 반짝이는강 2018.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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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5일에 작성한 글을 각색하여 새 블로그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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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꽃이 활짝 핀 자카란다 나무를 처음 본 것은 한 십년쯤 전에 여행으로 브리즈번에 갔을때다. 무엇을 찾아헤매이던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적한 주택가의 어느 집에 보랏빛 꽃이 활짝 펴 있는 나무 한그루가 우뚝 솟아있었다. 처음 보는 보라색 꽃나무였기 때문이었는지, 혹은 여행 중의 들뜬 마음때문이었는지, 당시 느끼기엔 나무에서 무슨 마법과 같은 힘이 뿜어져 나오는 것 만 같았다. 나른하면서 몽환적이던 그 풍경이 요즘도 가끔 기억이 난다.  
한국에 돌아가서, 그리고도 한동안은 그 보라색 나무는 이름이 뭘까 한참 궁금해 했었는데, 언젠가 그 나무 이름은 자카란다 (Jacaranda)라는 것, 그리고 호주의 봄에 꽃이 핀다는 것, 그리고 시드니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카란다 나무는 전세계에 약 49종이 있고, 열대 혹은 아열대 지방에서 볼 수 있다, 쿠바나 멕시코, 호주, 스페인, 아르헨티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카란다 나무에 대해 찾아보던 중 ABC에 실린 기사를 보니 자카란다는 원래 호주 토종 나무는 아니고 다른 대륙에서 가져와 호주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호주에 처음 자카란다 나무가 심겨진 것은 1864년으로 브리즈번의 보타닉 가든에 심겨졌다고 한다. 그 후로 아래로 아래로 다른 지역으로 퍼졌나보다. 브리즈번에서는 보통 10월에 자카란다 꽃을 볼 수 있고, 브리즈번보다 더위가 늦게 시작되는 시드니는 해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10월 중하순부터 11월까지 자카란다 꽃 구경을 할 수 있다.  

참고로 시드니대학교 교정의 Quadrangle 에 있는 자카란다는 나름 유명한 자카란다 나무 중 하나이고 시드니 대학교 학생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다. 아마 시드니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졸업 전에 그 앞에서 사진 하나씩은 다 찍어보지 않을까 싶다. 
파트타임 학생이라 수업 시작할때 맞춰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돌아오기가 바빴었다. 그러다 2016년에는 졸업 전에 꼭 그 유명한 자카란다 나무에 꽃이 만개했을때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다. 10월 중순인가, 내가 막 중간과제 제출을 완료하는 날 쯔음하여 엄천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오더니, 다음날 신문에 시드니 대학교 교정의 자카란다 나무가 세찬 비바람에 뿌리까지 뽑혀 쓰러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OMG.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그 유명했던(?)는 자카란다 나무 앞에서 사진 한장 찍어보지 못하고시드니 대학을 졸업했다... 어제 기사를 좀 더찾아보니 비 바람에 뿌리가 뽑혀서 나무가 죽은 것은 맞지만 그 나무는 수명이 다하기도 했던 터라고 한다. 참고로, 호주에서 주로 보이는 자카란다 나무의 수명은 보통 70년 정도이다. 시드니 대학교에서는 원래 있던 나무가 뿌리뽑혀 죽기는 했지만, 그 나무에서 몇몇개개의 가지를 채취해서 똑같은 나무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앞으로 한 십년 혹은 이십년 더 기다리면, 예전의 그 나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인하대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비교적 최근에 인하대학교에서는 유명한 벚꽃길을 이루고 있던 벚꽃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나무들을, 장소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없애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남자녀석이라 그런가, 나무가 그냥 있으면 새로운 건물을 지을수 없으니 베어버리는게 맞는거라고 답이 왔던 기억이 있다.  호주에서는 사람들의 추억과 별 상관 없는 나무들도 그대로 보존해서 집을 짓거나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마인드가 참 다른거 같다. 나무를 보존하려면, 건물을 조금 다르게 지을수도, 조금 옆으로 지을수도, 나무를 그대로 두고 위치를 정할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새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만, 추억과 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나보다...

아무튼 2017년에는 더이상 대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고로 주말에도 시간이 많으니, 자카란다 꽃구경을 꼭 가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 Julia가 찍어서 올린 자카란다 꽃나무를 봤다. 그녀는 킬리빌리로 꽃구경을 다녀왔는데, 매우 이색적이라며 사진을 올려두었었다. 그녀는 지지난 해까지 나의 윗집에 살던 이웃인데, 취미삼아 찍는 사진이 가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출판되기도 하고, 그녀 사진을 묶어서 연말에 달력만드는 회사에 저작권을 받고 사진을 팔기도 하는 그런 수준급 사진사이다. 

주말이고, 사실 그닥 계획이 없었던 나는, 오늘이다 싶어 자카란다 구경을 떠났다.  

이 사진은 오후 6시가 넘어서 찍은 사진이라 길에 사람들이 많이 없지만, 오후 5시까지만 해도 차들이 그냥 지나다니기 어려울 만큼 꽃구경 와서 셀카찍는 사람들이 넘쳐났었다. 

자카란다 꽃길로 유명한 McDougall St는 한쪽으로는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개성있는 집들이 있고, 봄이면 이렇게 자카란다가 아름다움을 뽑내고, 바로 앞에는 조그만 공원과 바다가 있다.  

나도 저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한참 서성였건만 아마 본인들이 찍은 사진 확인(?) 삼매경으로 보였던 젊은이들...

킬리빌리에 온 김에 여태 한번도 걸어서 하버브리지를 건너본적이 없다는 배우자를 위해 밀슨스 포인트역에서 출발해서 하버브리지를 건너봤다. 건너다 보니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유람선 한척이 사람들을 가득 싣고 선착장을 떠나고 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내 기억으론 시드니 선착장에서 떠나는 배들은 보통 거의 오후나 저녁 무렵에 떠나는 것 같다. 아마 그래야 밤새 항해를 해서 아침에 다음 목적지에 도찰할 수 있으니까 그런게 아닌가 싶다. 

북반구엔 봄에 벚꽃 구경이라면 남반구엔 봄에 자카란다 꽃구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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