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우자에게는 남자 형제가 한 명 있다. Richard.
결혼 전에는 만난적도 없고, 결혼하고는 십년쯤 전에 딱 한 번 보고, 최근까지 본적이 없었다. 고로 - 내 배우자랑 리처드도 최근 십년 남짓한 기간동안 서로 얼굴 보고 만난적이 한 번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배우자는 "My brother went to Eton and Cambridge" 라면서 우쭐해 하는건지 뻐기는건지 그렇다. 이번 해에 영국에 출장을 갔고, 배우자 부모님댁에 방문하면서, 말로만 들어본거나 다름없는 리처드를 이번 해에는 두 번 만날 수 있었다.
보통 영국에서는 이튼스쿨을 다니고, 캐임브리지나 옥스포드를 나오면 - 아주 좋은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다. 돈만 많아서 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라, 어느정도의 배경(=집안)이 있고 재력도 있어야 갈 수 있는 코스이기때문이다. 요즘은 문턱이 좀 낮고 넓어졌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다. 문턱이 넓어졌다고 하는건, 영국인만 가는게 아니라 다국적 초대형 기업의 총수의 자제나 중동 국가의 왕세자들이 인맥을 위해 이튼-옥스브리지 (옥스포드+캠브리지를 합쳐서 부르는 말)를 가기때문이다. 음....그러고 보면 찰스 왕세자는 아버지(=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의 고집때문에 여왕의 바램과는 달리 이튼스쿨이 아닌 다른 기숙학교(=보딩 스쿨)에 다녔다.
아무튼 - 그러면 내 배우자 집이 무슨 대단한 집이냐고? 아니다. 전혀 아니고, 배우자 동생인 리처드가 독특한 케이스다. 영국이 노동당의 집권으로 철옹성 같던 이튼 스쿨의 문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열어주기로 결정한 시점에, 꼬맹이 (아마 11-12살 쯤이었을 듯)던 리처드는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이튼 스쿨 장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직접 지원을 해서, 시험을 보고, 낙타가 바늘을 뚫는거 같은 경쟁을 전국 3위인가로 제치고, 이튼스쿨로 입학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학비의 대부분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말이다.
당시에 내 배우자에게도 - 형제가 같이 이튼에 입학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는데, 자뻑(?)이 심한 내 배우자는 단칼에 자긴 지금 학교가 좋다고 했단다. 허허허. 아마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할 만큼 인기가 있었기에, 이튼에 갈 마음은 하나도 안생겼으리라.
그리하여 리처드는 아마 13살에 이튼스쿨을 다니기 시작했고, 당연히 기숙사 생활을 했다. 주말에만 집으로 오는 그런 기숙사 생활말이다. 리처드는 지금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평범한 집안 출신인 그가 영국의 특권층 출신들이 다니는 이튼 스쿨에서 행복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만났을 때 그가 한 말 중에 하나는 "I had "a friend" and 내배우자 had "friends"" 라고 말이다. 즉 - 자기는 학창시절 친구가 딱 1명이었고, 내 배우자는 친구가 아주 많았었다고 말이다.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리처드는 옥스브리지 중에 공학 혹은 과학계열이 강한 캐임브리지로 갔다. 참고로 옥스포드는 정치쪽이 강하다. 저번에 캐임브리지로 나를 픽업 왔을 때 들으니 - 그는 캐임브리지에 다닐 때 캐임브리지의 유명한 펍인 The Eagle 에서 수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곳은 요즘은 - 캠브리지에서 관광객이 반드시 가야할 펍 1위인데... 그는 거기서 일을 했었다니... 그리고 스티븐 호킹 박사도 (당시에도 유명했다고..) 캠퍼스에서 종종 지나가며 봤다고... 그런 이야길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알고보니 그는 캐임브리지의 그 많은 칼리지 중에서 Trinity College 출신이다. 전에 캐임브리지 대학교에 대한 책을 읽은적이 있는데, Trinity college는 1546년는 헨리 8세가 세운 것으로, Francis Bacon이나 Sir Isaac Newton, Load Byron 등의 유명인사들을 줄줄이 배출한 캐임브리지 안에서도 명문 중에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나 같은 관광객은 잠깐 캠퍼스 구경할 때도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흐음....
아무튼 현재는 그는 - 변호사이면서 법학 강의를 하는 (전) 아내와 이혼을 하고, 재산분할 소송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그런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와 대화를 몇 번 해보니 - 생각이 이리저리 튀고, 호기심이 많다는 점에서는 내 배우자와 비슷하면서도, 참 정반대라고 느껴졌다. 영국의 포크 댄스(?)라 할 수 있는 Morris dance를 겨울 내 연습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공연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몇 년 전부터는 아코디언을 배워서 연주도 하고, 조율도 한단다. 여름이면 로마인 병사로 옷을 갖춰입고, 가끔 영화에 병사 엑스트라로 출연도 하고,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도 만나고, 재미있게 지내는 것 같다.
배우자의 아버지는 - 리처드가 태어난 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딸이 태어나길 바라며, 이름도 여자 이름으로 준비해 뒀었는데 아들이 태어나 실망했었다고... 요즘도 종종 이야길 하신다.
리처드는 젊을 때 브리즈번에 와서 CSIRO에서 일하며 꽤 오래 살다가 갔다는데, 그래서인지 요즘도 "호주"하면 아주 시골에다가 red-neck들만 사는 무식한 동네(?)라고 생각하는거 같다. 흠.... 나도 호주에서 나고 교육받은 애들을 겁없고 창의성은 넘칠망정 무식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 할 말은 없다.
3월에 나를 만났을 때 - 리처드는 가족인 나를 좀 더 알고 싶었다며, 만나서 반갑다고 했었다. 나 또한 그와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내 배우자가 자랐는지, 어떻게 성격이 형성되었는지, 가족관계는 어땠었는지, 어떻게 현재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리처드는 2-3주에 한번꼴로 5시간을 운전해서 부모님댁을 방문하고 있다. 여차저차해서 부모님 건강이나 상황이 더 악화되면 부모님 댁으로 몇 달간 이사들어가서 살 생각도 하고 있단다. 내 배우자 몫까지 혼자 다 하느라 수고가 많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은 어렵겠지만, 언젠가 그가 호주에 놀러와서 좀 더 많은 이야길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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