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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일상생활

시어머니에게 받은 생일축하 카드

by 반짝이는강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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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나는 영국 남자랑 결혼을 했고, 벌써 11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나갔다. 만 12년째 결혼한 상태(?)인 것이다. 결혼을 하고 매 해마다 남편의 부모님으로부터 받게된 것이 있으니 바로 생일 카드와 크리스마스 카드다. 한국에 있을 때도, 그리고 호주에 살고 있는 지금도 해마다 생일 2-3주 전에 생일축하 카드와 함께 예쁘게 개별 포장된 선물이 담긴 소포 꾸러미가 도착하고는 했다. 카드나 소포가 분실될까 염려가 되어 항상 카드 따로 소포따로 보내신다. 

시어머니가 보내신 생일선물


이번 해도 어김없이 생일 전에 생일축하 카드가 도착했다. 

남편의 어머니랑 내가 공통되는 부분은 아마 정성들여 카드를 고르고, 메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는거다. 시어머니도 그랬을테고, 나도 그래왔는데 - 우리는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그림이나 메세지가 들어가 있는 카드를 꽤나 공을 들어 고르고, 보낸다. 생일카드는 마음에 드는게 있을 때마다 미리미리 사두는 편이다. 다만 - 우리의 이런 정성을 알아주는 수취인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 우리는 서로에게 잘 맞는 셈이다. 서로가 보내주는 카드의 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 고마워하고, 모든 서신 왕래를 보관하니 말이다. 

시어머니와 나는 전화통화도 가끔 했지만 안부 및 소식을 주고받기 위해 꾸준히 서신왕래를 해왔는데, 평균을 내자면 아마 1년에 열 번 이상 서신을 보낸다. 결혼한지 만 11년이 지났으니 - 지금까지 합하면 서로에게 아마 100 개 이상의 카드 및 편지를 보냈을꺼다. 시어머니가 보내주는 카드들은 어디서 이런 카드를 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항상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드는 생일축하 카드

​다년간 계속된 서신왕래때문인지 - 혹은 다른 이유들 때문인지 - 몇 번 만난적도 없는 나를 시어머니는 꽤나 예뻐해 주신다. 그런데 - 요즘 시어머니 건강이 아주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말을 하거나 움직이면 호흡이 가빠져서, 전화통화를 하다가도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시아버지에게 넘기거나 전화를 끊고는 했는데, 2018년 들어서는 전화통화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수년간 원인을 모르다가 지난 해에야 폐경화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폐기능이 많아 손상되었고, 전적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계시다. 

워낙에 매우 깔끔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셨는데, 본인 혼자 움직일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고, 이제는 간단한 샤워나 화장실 가는 것 조차도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해야하니, 이 상황에 대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몇 달을 더 버티기 힘들꺼 같다고 전해 들었다. 


이제는 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분이 내 생일이라고 손수 생일카드를 써서, 시아버지를 통해 보내주셨다. 생일카드와 함께 동봉 된 편지의 서체를 보자마자 시어머니가 얼마나 야위었는지 느낄 수 있었고, 그리고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 

시어머니가 보내신 생일축하카드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 시어머니도 아마 이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생일카드가 될꺼 같다고 생각하고 쓰신 듯 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생일 카드에는 시를 하나 적어 보내주셨다.  

생일카드


지금까지는 시어머니가 보내신 카드나 편지에 한번도 자필로 메세지를 쓰신적이 없는 시아버지도 이번에는 생일축하 메세지를 짧게 적어 보내셨다. 어쩌면 시아버지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시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죽음이 다가오는걸 지켜보는 것 밖에는 달리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걸 매우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삶에 대한 애착을 점점 놓아가고 있으신지, 최근 들어서는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몇 번 만난적도 없는 나를, 자기들에게 나는 며느리 (daughter in low)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매우 예뻐해주신 두 분...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살아계신 동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Christmas mid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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