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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일상생활

무위도식하는 주말

by 반짝이는강 201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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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주일에 바빴기에, 그리고 수면 패턴이 조금 엉망이 되어 피곤했던지라, 이번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하며 無爲徒食 ( 무위도식 -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음) 하겠노라고 다짐했던 터였다. 

무위도식 중에 食 - 즉, 맛있는 음식에 좀 더 치중을 하려면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장을 보러 가야하지만, 엉망이 된 수면패턴 덕분에, 늦게 일어난 내가 한낮인 12시가 되면 끝나버리는 주말시장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호주에 살면서 참 다른 것은 - 한국은 가게들이나 시장이 늦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지만, 호주는 가게들은 8-9시 경에 열어서, 4-5시가 되면 닫고, 시장은 5시경에 열어서 12시면 닫는다. 하물며 우리 동네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들은 (Coles, Woolworth, ALDI) 모두 평일에는 8-9시에, 일요일에는 6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도심 한가운데 있거나, 시드니에 있으면 좀 더 늦게 까지 영업을 하기는 한다. 

이러다 보니 - 좋은건지 나쁜건지 - 조금 더 준비성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집에 우유랑 달걀이 똑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하루 정도 여유 있게 미리미리 사다두게 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식량(=인스턴트 혹은 냉동 식품)도 1-2가지 정도는 사다두게 된다. 

<요리 1. 손수 칼로 빚은 중국식 면 + 안심 스테이크>

안심스테이크 손수 칼로 빚은 면 요리

​아무튼 - 토요일에는, 어쩌다보니 배우자의 지인인 Jackie와 Justin네 집에 잠깐 방문하게 되었다. 둘은 브리즈번에서 집값 비싼 곳 중 하나인 인두루필리에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 그리고 지하 와인저장고가 딸린 대저택에 살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둘 모두 은퇴한지 10년 이상 되었고, 지금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무위도식 할 예정이다. 

둘은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되었느냐하면...Justin이 젊어서부터 회계사로 일하던 조그만 회사가 있었는데, 이게 다른 회사에 매각되면서 - 자기 몫의 지분을 받고, 과감하게 바로 은퇴했다고 했다. 대단한 결단력이다. 

Jackie와 Justin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 잠깐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서 소고기 안심 (eye fillet)을 한 덩이 집어왔다.

참고로 고기를 살때는 - 1인분 씩 잘려서 포장된걸 사는 것 보다는, 큰 덩어리로 사와서 집에서 마음에 드는 두께로 자르는게 더 좋은 방법이다. 

칼로 잘라 만들었다는 중국식 면이 - 우리가 맛봐주기를 몇 달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면에다가 소고기랑 야채를 넣은 볶음 면 요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 배우자는 뚝딱뚝딱 진짜 기똥차게 맛있게 만들어주었다. 

아오........! 이 맛에 산다. 


그간 사워도우로 호밀빵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토요일에 호밀가루 (Rye flour)를 사왔기에 - 배우자가 저녁을 만드는 동안 나는 호밀빵을 만들었다. 

<베이킹 1. 사워도우로 만든 호밀빵>

사워도우 호밀빵

​유기농 호밀가루라서 그런건지 - 사워도우 스타터에 밀가루 대신 넣어주었더니, 사워도우 스타터가 하루만에 3배까지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왕성하게 부피가 늘어난건 처음 본다. 

필요한 밀가루 500 g 중 100 g을 호밀가루로 대체해서 만들었는데, 도우를 만들때는 꽤 뻑뻑한거 같더니, 1차 발효 후 빵 모양으로 도우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만져줄때부터 굉장한 탄력이 느껴졌다. 

구워서 반으로 잘랐을 때는 평소보다 더 폭신한 느낌이 났고, 맛이나 향에 있어서도 그간의 사워도우 브레드에 비해 효모들의 구수한 맛이 났다. 배우자는 malty 하다고 표현했다. 

호밀빵 수제 홈베이킹

무위도식 주말 - 대망의 일요일!! 

​뼈가 붙어있는 진공 포장된 로스트용 소고기 등심을 사다 놓은지 벌써 꽤 몇일이 되었다. 메뉴는 이걸로 이미 확정해 둔 상태였다. 배우자는 이걸 요리 할 생각에 아침부터 들떠서 - 레시피 찾고 소고기 무게를 재서 로스팅 할 온도 및 시간을 계산하고,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중간 크기의 감자는 물에 살짝 익힌 후, 로스팅할 팬 위에 놓고, 아주아주아주 뜨거운 팬에다 올려 단시간에 바깥 표면을 익힌 (searing) 소고기를 그 위에 놓고, 마당에서 갓 꺾어온 로즈마리를 올리고 그대로 오븐에 넣어준다. 

계산한 로스팅 시간이 지나면 - 오븐에서 꺼낸 후, 소고기는 따로 접시에 담아 호일로 덮어서, 육즙이 ​다시 고기 안으로 재흡수/분포되도록 resting 시켜준 후 - 원하는 크기대로 자른다. 

<요리 2. 소고기 등심 + 감자 구이>

일요일 만찬

​사진으로 봐도 먹음직스럽지만 - 참 맛있었다. 

여기에다 선물 받아서 고이고이 모셔둔 Meerlust 피노누아 2012년산을 따보았는데... 오래 숙성된 피노누아의 색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만든지 오래되지 않은 피노누아는 붉은 빛이 밝고 선명하게 나는데 반해, 오래된 피노누아라 그런지 바랜듯한 엹은 붉은색이 났다. 

Meerlust의 2012년산 와인들은 꽤나 유명한거 같은데 - 그 맛과 향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나는 훈련이 좀 필요한가보다. 

Meerlust

약간의 귀찮음에 애플파이를 만들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 일요일 점심겸 저녁이 너무 훌륭했기에 - 보답 차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파이지 만들기부터 시작해서, 애플파이도 만들었다. 

이번에는 Taste.com 에 있는 애플파이 레시피를 참고해서 만들었는데 - 차가운 버터, 차가운 물, 차가운 계란으로 파이지를 만들어서 냉장고에서 30분간 숙성도 시켜만든 덕분에, 아주 가벼운 질감의 페이스트리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맛있는걸 만들수 있고, 뭐든지 만들 의지도 있는 배우자를 만난게 어찌보면 참 비슷한게 만난거 같다. 또 내가 좋아하는거라면 뭐든지 만들어주려고 하는 배우자를 만난건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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