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워낙에도 술이 센(?) 나였지만, 결혼을 하고 우리 부부는 최근까지 십 년이 넘도록 정말 둘이서 와인이며, 맥주에 위스키까지 남들이 들으면 입이 쩍 벌어질만큼 술에 돈을 엄청 들이부어왔었다. 2세 계획이 없으니 딱히 금주를 해야겠다는 필요도, 노력도,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좀 많이 늦기는 했지만 이번 해에 드디어 술과 거리를 두게 된건, 지금 생각해 보면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집을 사면 -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 돈드는 일을 별 갈등 없이 아주 효과적으로 단번에 중단하게 되는 것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허허허...
요즘은 가끔 - 어쩌다 저녁 때 둘이서 와인을 한 병 비우거나, 사교적인 모임에서 한두잔쯤, 혹은 출장을 갈 때, 항공사 라운지나 비행기에서 무료로 주는 와인 한 두잔쯤을 즐기는게 전부다.
금주를 하게 된 계기
배우자의 경우에는 처음에 결심을 할 때는 나의 영향이 있기는 했겠지만 금주를 하게 된건 누군가가 강요를 해서는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게 결코 본인에게나 부부로서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음을 인식한 본인의 자발적인 결정이었다.
배우자가 금주를 먼저 시작했고, 배우자가 금주를 하더라도 나는 금주 따위(?)를 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과다한 음주는 건강에 좋을게 없고, 배우자가 금주를 하는데 나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같이 금주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나도 금주에 동참하게 된건 주류 가격에서 기인한 금전적인 영향이 컸다.
호주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주류를 팔지 않고 따로 주류만 취급하는 가게 (호주에서는 보틀샵, bottle shop이라고 함)에서 주류를 사야한다. 댄 머피 (Dan Murphy's), BWS, Liquor land가 호주의 대표적인 주류 판매 체인점들이다. 그 중 가장 저렴한 곳은 댄머피이다. 똑같은 와인 혹은 기타 주류들을 댄 머피에서 사다가 BWS나 리커랜드에 가서 사려고 가격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시드니에서는 운전해서 10분만 가면 주류도매점이나 마찬가지인 댄머피가 있어서 양질의 주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는데, 브리즈번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댄머피가 없다. 가장 가까운 지점도 20분 이상 운전해서 가야한다.
즐겨마시는 와인과 맥주 가격의 댄머피 가격을 잘 아는 내가 BWS나 다른 가게에서 똑같은 주류를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려니 너무나 아까웠다. 집 근처 가게들은 댄머피 가격보다 보통 10~20% 더 높은데다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드니에서 소비하던 금액 범위에서 고르자니 낮은 수준의 와인을 골라야 했고 - 그건 입에 맞지가 않았다. 다른데 가면 얼만지 뻔히 아는 와인을 비싸게 사고 싶지는 않았고, 결국은 입에 맞지 않는 와인을 마시느니 안마시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금주 초기
우리 부부는 항상 저녁을 만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좋아하는 와인이나 맥주를 마셔왔다. 일상생활패턴의 일부에 술이 있었기 때문에 금주를 시작한 처음 세 달은 허전하고, 저녁이 되면 뭔가 빠진거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의식적으로 녹차와 손수 갈아만든 생강차를 마셔댔다. 탄산수를 짝으로 사다가 마시기도 했다.
그렇다고 100% 완벽한 금주를 한건 아니고, 금요일이거나, 그날의 기분이나 메뉴에 따라,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와인을 같이 한 병 비우거나, 버거를 먹는 날은 맥주를 한 병씩 마시기도 했다. 그만 마시고 싶을 때까지 마시는 무절제한 음주에 비해, 미리 정해놓고 한잔 혹은 많아야 두잔 정도 마심으로써 오히려 맛을 200% 즐기게 된 것 같다.
금주 후 생긴 변화
그러기를 삼사개월 하고 나니 이제는 주류 대체품 없이 맹물만 마시다 요리가 끝나고 저녁 식사가 끝나는데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배우자는 금주를 하면서 밤에 치즈같은 것들을 먹는 습관을 조금은 자제하게 된 것 같고, 그리고 전에 비해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고 하니 - 건강신호에 초록불이 켜진 것이리라. 가끔 보는 사람들은 배우자에게 슬림해진 것 같다고 하니 그것은 보너스다.
나는 전에는 저녁시간이면 와인을 한두잔쯤 마시고, 10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 다시 한밤중 미팅을 들어가고는 했는데 -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신 냉수 한잔을 들고 한밤중 미팅을 들어간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 어쨋든 그렇다.
흡연자가 완벽한 금연자가 되면 담배 연기가 구역질 난다고 하는 것(?)처럼까지는 아니지만, 요즘은 전에는 잘 마시던 와인들이 어쩐지 내 입에 안맞는 경우를 왕왕 발견하게 된다. 이제 내 몸에서 아주 좋은게 아니면 더이상 알코올을 원하지 않는다고 신호를 보내오나보다.
덤으로 주류에 소비하는 비용이 현격히 줄어들면서 전체적인 소비가 줄어들었다.
여전히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부부 동반으로 혹은 각자 파티에도 가고, 가끔 기분이 내키면 집에서 배우자와 같이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씩 하기는 한다. 다만 - 절제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우리의 변화랄까?
완벽한 금주는 아니지만 2018년 새해에 계획했던 일 중 하나인 음주 횟수를 1주일에 3-4회 미만으로 줄이기를 계획보다 훨씬 더 잘 실천하고 생활화 했기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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