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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일상생활

2020년 4월 - 일상 & 갈리폴리전투 & 안작데이

by 반짝이는강 202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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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으로 강제 칩거생활을 하다보니 - 안그래도 외출이 없는 편인데, 요즘은 더 외출이 없다. 필라테스도 갈수가 없으니 - 나름 좀 건강을 챙겨보겠다고 업무가 끝나면 동네 산책을 가는데 -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나보다. 종종 동네산책을 하고는 했지만, 산책하면서 요즘처럼 많은 동네 사람들을 만난적이 없다. 오후 5시쯤 되면 동네 사람들 절반쯤이 나와서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거 같다. 

몇 일 전엔 산책을 나갔다가 노을이 예뻐서 사진을 한장 찍어봤다. 내 사진실력으로 아름다운 노을을 캡춰할 수가 없어서 아쉬울뿐...  

 

언덕 위에서 본 노을

 

언덕 위에 살면 이렇게 멋진 노을을 매일 볼 수 있을테니, 그것도 좋을꺼 같다.  시드니의 서향 고층 아파트에 살 때는 해가 질 때 발코니에서 화이트 와인 한 잔 들고 일몰을 감상하고는 했는데 그 생활이 살짝 그립다.

아! 그때 우리집 윗층에 사는 러시아+인도 커플이 있었는데, 한 달 전에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시베리아 태생인 Julia는 사진찍는게 취미였고, 가끔 그녀의 사진이 내셔널지오그래피에 실린다고 했었다. 그녀는 찍은 사진들은 모아 해마다 달력 출판사에 돈을 받고 판다고 했다. 취미활동이 프로급이라 부러웠던 Julia! 예쁜 아기 잘 키우기를... 

얼마 전 포스팅에서 요즘 호주에선 - 산책 나온 아이들을 위해서 창문에 테디베어 인형을 내놓는게 유행이라고 했었는데 - 우리 동네에도 테디베어 내어놓은 집도 있고, 담장에서 집 건물까지 간격이 커서, 요롷게 울타리에 곰 인형을 매달아 놓은 집도 있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한 배려... 물론 본인이 좋아서 하는거겠지만, 보는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한다. 

 

담장에 걸린 곰인형

 

예전처럼 장보러 가기도 어렵고, 전반적으로 음식 혹은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요즘은 거창한 요리는 안하고 - 쉬운 요리를 많이 한다. 고기를 덩어리째 오븐에서 굽거나 오랜 시간 끓이는 요리들인데 - 마당에 큰 로즈마리가 있어서 마음껏 잘라서 쓸 수 있어서 좋다. 마당 큰 집에 산다면 - 허브 중에서 1번으로 심어야 하는건 로즈마리가 아닌가 싶다. 2번은 아마... 파슬리. 3번은 오레가노 / 타임쯤이 아닐까? 고수 (=코리앤도)도 매우 유용한데 얘는 기르기가 참 쉽지 않다. 

 

소고기 슬로쿡

 

몇 일 전에는 무쇠솥에다가 작은 감자들을 깔고, 그 위에 겉만 살짝 익힌 소고기 덩어리 + 양파 & 마늘을 넣고, 사이사이에 로즈마리를 꽂아주고, 마시고 남은 레드와인+물을 자작하게 부어서 2시간쯤 오븐에서 익혔는데 정말 부드럽고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그래도 낮이면 근 30도까지 올라감) 요런 요리들이 제격인듯. 

 

오늘은 안작 데이 (ANZAC Day)라고 - 전쟁에서 죽은 호주&뉴질랜드 군인을 기리는 날이다. 그 기원은 제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세계 1차 대전 (1914-1918)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동로는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북해를 지나는 방법과 흑해를 지나는 방법 크게 2 가지가 있는데 - 북해를 지나는 방법은 덴마크가 중립을 선언하고, 독일을 지나야 하고, 여러모로 위험하게 되어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은 흑해를 지나는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독일과 오트만 제국 (지금의 터키)가 손을 잡게 되면서 이 흑해를 지나는 방법도 막히게 된다. 아래 지도를 보면 노란색인 이스탄불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을 지나지 못하면 흑해로 갈 수가 없기때문이다. 

 

갈리폴리 반도 - ANZAC 연합군이 대거 사망한 곳

 

그래서 연합군은 러시아의 물자 수송로를 유지지하기 위해 흑해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트만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을  점령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서 그 전초기지인 갈리폴리 반도 (Gallipolli Peninsula, 위 사진에서 빨간색 점)를 우선 점령하겠다는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간다. 

 

갈리폴리 전투 혹은 다르다넬스 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 (campaign)은 1915년 2월 17일부터 1916년 1월 9일까지 지속된다.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군은 쉽게 갈리폴리 반도를 점령하고, 쭉쭉 진격해서 오트만 군인들을 제끼고 콘스탄티노플도 쉽게 점령할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즉, 연합군은 오트만 제국을 상당히 얕잡아봤고, 결과적으로 전투를 위한 사전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합군은 정치적으로 응집되지 않았고 (영국군 내부에서 불화가 있었고, 결과 육군없이 해군만 보냄),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게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이 떼죽음 당한 결정적 이유).

연합군은 갈리폴리로 해군을 보내고, 오트만군에게 대패하고를 반복하다가, 작전을 재정비 후 1915년 4월 말 갈리폴리 반도 상륙작전을 세운다. 이 4월 25일 새벽에 진행된 이 상률작전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이 대거 참여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상륙작전이 펼쳐진 곳은 지형도 지형이거니와 배후를 책임지기로 한 엄호군과 작전 시간이 어긋났다... - 결과는  상당수가 배에서 내려서 땅에 서자마자 언덕 위에 있는 오트만 군이 쏘는 총에 맞아죽음...

갈리폴리 전투에는 총 약 50만명의 연합군 군인이 참여했고, 30만명 이상의 사상자 (4만 6천명 사망 추정)가 나왔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영국군 약 35만 명, 프랑스군 약 8만 명, 호주군 약 5만명, 뉴질랜드군 약 1만 5천명이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  투입된 호주군 5만명 중에 8천 709명이 사망했고, 1만 9천 441명이 크게 다쳤다. 즉 절반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1914년은 호주 총 인구가 약 5백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5만 명은 호주 남성 (전 연령)의 2% 에 해당하는 숫자이고, 아마 성인 남성의 3~5%에 해당하는 숫자였지 싶다. 즉 성인 남성 20~33명 당 한 명꼴로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는 말이니까 - 호주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갈리폴리에 참전한 아버지나 남자형제, 아들 혹은 친구나 친척이 있었을꺼라는 말이다. 아무리 영국 연방 국가라지만 이렇게 먼 호주랑 뉴질랜드에서 왜 그렇게 많은 수의 군인이 가야했는지는...참... 

오트만 제국에서는 이 전투에 약 32만 명을 투입했고, 25만명의 사상자 (5만 6천 명 사망 추정)가 났다. 

전쟁 결과는? 오트만 제국의 대승 &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군의 대패

그 후 갈리폴리 전투에서 죽은 군인을 기리기 위해 ANZAC Day 행사가 시작되었고, 갈리폴리 상륙작전이 시작되던 시간에 맞춰 새벽에 기념 행사를 하는 것이다. 호주 곳곳에서 가끔은 갈리폴리에 참전한 군인을 기리는 비석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변이 로즈마리로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ANZAC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 군이 상륙한 갈리폴리 반도에 야생 로즈마리가 많았었기에 기념하는 의미로 심어둔 것이라고 한다. 같은 이유로 ANZAC Day 행사에서 로즈마리가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Gallipoli_campaign  

https://en.wikipedia.org/wiki/Anzac_Day#Commemoration_at_Gallipoli  

https://namu.wiki/w/%EA%B0%88%EB%A6%AC%ED%8F%B4%EB%A6%AC%20%EC%A0%84%ED%88%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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