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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일상생활

사직

by 반짝이는강 202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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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커리어를 위해 이직할 곳을 정하고, 현재 있는 곳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는 지난 주에 회사에 계속 남아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두 번 받았다. 4년이 남짓한 기간동안 원해오던 제안이었는데, <조금 더 기다리면> 그 일이 99.9% 일어날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거다. 연봉이나 처우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이기에 고민이 들수도 있었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라> 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오히려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4년을 넘게 기다렸고, <다음 번이 너야> 라는 말을 듣고도 2년을 더 기다렸는데, 또 더 기다리라니. 됐다. 안한다 안해. 

그리고는 몇일 지나서 건너건너 다시 연락이 왔다. 그 제안을 좀 더 빨리 하면 회사에 남을꺼냐고. 중개인이 된 Emma는 나보고 즉각 답을 하지 말고 하루 정도 여러모로 따져보고 심사숙고해보라고 했다. 나도 안다. Emma도 한때 이 오퍼를 원했다는걸. Emma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으니 - 한두달만 더 기다려 보는게 어떠냐고 했다. 

나라고 미련이 남지않는건 아니다. 현재 조직에 조인한지 6년이 되어가고 있고, 사람들이 좋고, 업무량이 많지도 않고, 워라벨도 맞출수 있고, 앞으로 몇 년간 인센티브도 괜찮을꺼고, 휴가도 많이 주고, 연봉도 괜찮고, 기타 베네핏도 많다. 회사 네임벨류도 아주 높다. 그런데 - 나는 점점 정체되어가는 느낌이다. 아직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데, 머리 쓸 일이 없는거 같은거? 머리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별로 안하고 싶은 그런거? 결정적으로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면 -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도 무서워서 못나갈꺼 같다. 경쟁력이 없을까봐. 사실은 지금도 무섭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할 때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할 때 무서웠던 것처럼. 

돈도 중요하고 워라벨도 중요하지만 - 앞으로 몇 년은 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내 머리가 얼마나 더 회전할 수 있나, 이젠 조금 유연하고 열린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확인해 보고 싶다. 무엇보다 <안해본 업무>도 해보고. 그래서 이끼가 안낀다는 rolling stones = 구르는 돌이 되어보기로 했다. 

 

현재 있는 곳에서 마지막 근무일은 5월 29일로 정해졌다. 아직 거의 두 달이 남은만큼 - 나의 사직 공고는 5월이 되어야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이번 주 월요일에 나의 사직 공고가 단체 이메일로 부서 전체에 뿌려졌다. 

Dear All,

I’m sad to advise that ***** has resigned from her role as *****.

***** has been an integral part of ***** and indeed the entire ***** team and we will miss her greatly. In addition to her study work, she was co-lead for our Teletrials project last year, the output of which has set us up well to accommodate the Telehealth/Teletrials needs of our sites in this most unprecedented time.

Please join me in wishing ***** all the best for her future endeavours. Her last day will be 29th May. 

Kind regards,
M

요즘 일에는 마음을 놓고있기도 하고, 딱 그 시점에 다른 일을 하느라 한 30분 자리를 비우고 있었는데 돌아오니까 메신져랑 이메일, Whatsapp에 불이 났다. 

 

NOOOOOOO!!! 이렇게 짧은 문구도 있고 

 

현재 회사에 채용공고가 난걸 알게된 시점부터 알게된 T는 이렇게 조기은퇴를 하는거냔 농담을 해오기도 했고..

!!!!!  What’s happening? Are you ok? Where are you going? If its an early retirement pls lie to me … heehehe… awwww… sorry weve not had a chance to catch up last few times you’ve been to Sydney…

 

시드니에 있을 때 월요일 점심시간마다 같이 PT (=Personal Training)을 받던 Freda는 요런 따뜻한 메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I am going to miss you so much! ☹

You are so lovely to work with and I consider you a dear friend, even though we don’t get to see each other much these days. I have always commented that when I worked on your studies, your protocol training was the best – so clear!!

Are you off to a new role, or have you decided to have a bit of a break?

 

서로 잘 알진 못하지만 - 옷깃이 스치던 사람들로부터 이런 메세지들도 왔다. 

Hi *****,

Sad to read you are leaving, even if we did not have the opportunity to work together.

Wishing you all the best!!

 

각종 메신져로도 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번 주 내내 연락이 왔다. 괜히 떠난다고 했나... 들어왔던 제안을 수락할껄 그랬나... 하는 찰나에 나의 사직이 기정사실화 되었고, 그리고 갑자기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아쉬움을 표해주고, 따뜻한 말들을 해주어서, 마음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근 6년 동안 직장생활 잘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보내준 관심과 사랑만큼 -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하고 좋은 기억만 담아서 떠날 수 있게 차근히 잘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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