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가 제철일때 피클을 만들어두면 한동안 두고두고 집에서 언제든지 맛있는 피클을 먹을 수 있다. 저장공간이 넉넉하고 빈 유리병들이 많이 있다면, 한 스무병쯤 만들어두어도 좋을꺼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몇 해 전에 피클 만들기에 꽂혔을 때는 한번에 두세 병씩 열심히 만들다가 겨울이 되고, 그러다 최근 몇년 간은 피클 만들기가 시들해졌었다.
오이피클을 만들질 않으니 한동안 그 맛을 잊고 살다가 몇달 전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갔다가 우연히 오이피클 한 통을 사오게 되었다. 바로 Sandhurst의 Sandwich stackers 라는거다. 오이피클은 전에도 몇 번 사본적이 있는데 딱히 맛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고 - 그게 결정적으로 내가 몇 년 전에 오이피클을 집에서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배우자도 나도 맛이 신세계!! 라며 이 오이피클은 진짜 맛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었다. 2kg 이나 되는 오이피클 한 통을 다 먹어치우는데 2 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Sandhurst (샌드허스트)는 어느 나라에서 온건가 싶어서 보니깐 뜻밖에도 호주산 브랜드로 가족형 기업이다. 오이피클 뿐 아니라 페스토, 올리브, 사워크라우트 (독일식 양배추 절임), 케이퍼, 젤라피뇨 절임, 발사믹 식초 등등을 만든다. 이 오이피클이 너무나 맛있었기때문에 다른 제품들도 맛이 궁금하다. 위 사진에서 보이겠지만, 일반적인 미국산(?) 피클과는 다르게 위에 병 위에 코리안도 씨드 (Coriander seed - 즉 고수 씨앗)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동동 떠있고, 밑에는 가늘고 길게 솔잎처럼 생긴 딜 (dill - 허브의 일종) 이파리들이 가라앉아있다. 흔히 말하는 피클링 스파이스들이 넉넉히 들어가 있다. 병 속에 들어간 재료들을 보면 bread & butter 스타일의 피클이다.
피클 이야기하는데 bread & butter가 왜 나오냐고?
서양에서는 빵과 버터가 음식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필수적인 것이다. 한국 스타일로 하자면 밥이 주식이고, 빵 먹고 사는 나라에서는 빵이랑 버터가 항상 함께 다니는 필수 식재료인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bread and butter" 라고 하면 "꼭 필요한" 이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더러는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오는 직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가령 이렇게 쓰인다 - I'm an artist on the weekends, but being a teacher is my bread and butter. 가끔은 bread earner 라는 말도 듣는데, 이건 "돈을 벌어오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Who is the bread earner? My mom is the bread earner.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시 피클 이야기로 돌아가면 -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까 피클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가령 한국식 오이 피클은 짠지의 일종인 오이지라고 딱 뜬다. 그 외에도 식초 없이 소금물에 절여서 발효시키는 방법 (Brined pickles), 소금물에 마늘과 딜을 넣어서 발효시키는 방법 (kosher dill - 미국), 독일식, 헝가리식 등등이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다양한 오이 저장방법 중 하나가 바로 bread and butter pickles 인데 얇게 썬 오이를 식초 + 설탕물에 절이는 것이다. 바로 한국에서 파스타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피클을 만드는 방법이다.
Bread and butter pickle 이라는 이름은 Omar and Cora Fanning 이라는 미국의 일리노이주 (Illinois)의 농부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은 크기가 작아서 상품성이 떨어져서 팔 수 없는 오이들을 피클로 만들어서 식료품점에 들고 가서 빵이나 버터같은 필수품 (staples)으로 물물 교환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다고 한다. 이들이 만든 피클은 반응이 좋았기에 1920년 대에 그들은 계속 피클을 만들어 팔게 되는데 그러면서 상품의 이름이 필요해졌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려운 시절 피클을 빵이나 버터처럼 필수적인 것들로 물물교환 하던 것을 떠올리며 1923년 자기네 피클 이름을 "Fanning's Bread and Butter Pickles" 으로 등록한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Pickled_cucumber) 그 후식초와 설탕물에 절이는 피클은 bread and butter pickle 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로 - 이들이 이 방법으로 피클 만드는 방법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이 방법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상품으로 만들어 잘 팔리게 되고, 그래서 마침 이름도 붙인게 이들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 다른 나라에 가서 파스타 주문한다고 피클 주는건 음......적어도 나는 본적이 없다.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파스타나 피자를 주문했을때 피클을 주는건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인 것 같다. 저번 주에 식당에서 스파게티, 펜네, 페투치네를 번갈아 주문한적이 있는데, 파마산 치즈만 딸랑 따라 나왔다.
아무튼 몇일 전에 콜스 (Coles)에서 장을 보다가 레바네즈 오이 (Lebanese cucumber)가 6-7개 들이 한 팩이 저렴한게 있어서, Sandhurst의 피클맛이 생각 났고, 집에서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선 1개에 약 25~30cm 쯤 하는 긴 오이가 주로 보이지만 호주에서는 한 개에 15~20 cm 정도의 약간 통통한 오이가 더 자주 보인다. 한국처럼 긴 오이도 있기는 한데, 어쩐지 비싸기도 하고 잘 안사게 된다. 어떤 오이로 하든 피클 만들기에는 지장이 없고, 동그랗게 썰건 길죽하게 썰건 맛은 똑같으니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되겠다.
오이피클 재료
오이 5-6개 (준비한 병에 다 안들어가고 남으면 오이 마사지 하는 것으로... )
식초 400 ml (저렴한 식초 사용하세요 - 비싼거 필요없고 그냥 식초기만 하면 됩니다. 애플 사이다 비네가도 써보고, 2L 에 $2 하는 식초도 써봤는데 맛은 별 차이가 없었어요.)
물 200 ml
설탕 (흑설탕 백설탕 상관없음) 300 ml
소금 2 tbsp
머스타드 씨 2 tsp
코리앤도 씨 2 tsp
강황 가루 (turmeric powder) 0.5 tsp
정향 (clove) 6개
월계수 잎 3 장
star anise 1개 - 없으면 생략해도 맛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홍고추 1개 - 4-5등분으로 썰어주세요.
전 없어서 안썼지만, 집에 남아있는 딜 (dill) 이 있다면 오이 담기 전에 병에 한움큼 넣어주세요.
**한국어 레시피를 보면 물:식초:설탕 비율이 1:1:1 인 것이 많았고요, 영어로 된 레시피를 보면 식초:설탕=1:1 ~1:1.5 정도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제 맘대로 설탕과 액체 (물 + 식초)의 비율을 1:2로 하되 물보다 식초를 더 넣었습니다. 설탕:식초=1:1로 맞춰주고 여기에 필요시 (가령 식초가 다 떨어졌다 라거나 하는...)에 물을 조금 추가해 주시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피클링 스파이스?
한국선 피클링 스파이스라고 큰 슈퍼마켓에 판다는군요... 보통은 아래와 같은 것들을 넣어주면 됩니다. (출처: https://www.allrecipes.com/recipe/231256/homemade-pickling-spice/) 전 그냥 집에 있는 걸로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제맘대로 구색 맞춰서 제맘대로 비율로 넣었습니다. 재료가 한두가지 없다고 포기하지는 마세요!
머스타드 씨앗 (mustard seeds) 2 tbsp
올스파이스 베리 (allspice berries) 1 tbsp
고수씨앗 (coriander seeds) 2 tsp
말린 홍고추 굵게 부순 것 (red pepper flakes) 1 tsp
생강 가루 (ground ginger( 1 tsp
월계수 잎 2장
계피줄기 (cinnamon sticks) 2 개
정향 6개 (cloves)
<만들기>
1. 오이를 길죽길죽하게 혹은 동그랗게, 혹은 4등분을 하던지, 마음대로 썰어주세요. 전 Sandhurst 샌드위치 스태커처럼 해볼꺼라고 대부분은 길죽길죽하게 썰고 한개만 동그랗게 썰었는데, 담번엔 다 동글동글하게 썰까봐요.
2. 썬 오이에 소금 두 숟가락을 흩뿌려서 골고루 섞은 다음 20~30분 절여줍니다. 그러면 오이에서 수분이 빠져나와요. 절여진 오이는 물에 한 번 헹군다음에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주세요.
3. 홍고추 (그리고 딜)를 뺀 나머지 재료들을 모두 냄비에 담고 끓여줍니다. 아래 눈금 보이시나요? 저는 오늘 설탕:식초:물 비율에만 집중하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병에 붓고 보니 이 단촛물이 모자라서 설탕:식초:물 비율 맞춰 조금 더 끓어야 했답니다.
4. 오이를 준비된 깨끗한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고, 홍고추도 (딜도 있으면 딜도) 담고, 그 위에 뜨거운 단촛물을 붓고 뚜껑을 꼬옥 닫아줍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 레시피마다 다양한 방법들이 있더라구요. 단촛물에 오이를 넣고 가열했다가 (혹은 더러는 끓였다가) 유리병에 옮겨담으라는 것도 있고, 유리병을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하라는 데도 있고, 등등등... 물론 소금으로 절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절이는 시간에 대해서도 상당히 분분해요.
이미 브래드 앤 버터 레시피로 오이 피클을 여러번 만들어본 저는 그런 과정 그냥 생략했습니다. 전 한 병 만들어서 한달안에 다 먹을테니 멸균 할 필요까지는 없을꺼 같고, 오이를 끓이는건 (혹은 가열하는건) 다음에 기억나면 해보죠. 그냥 해도 아삭아삭 맛있거든요.
짜잔~~~~ 이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면 먹으면 됩니다.
이 오이피클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벌써 다 먹었는데, 호주는 아직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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