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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

2018년 12월 31일에 한 일 - 집에서 바게트 굽기

by 반짝이는강 2019.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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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1일에 내가 한 일은... 집에서 바게트 만들기였다. 왜 그랬느냐고 한다면 - 어쩌다 보니 휴가에 접어들면서 Eric Kayser (에릭 카이저)의 책 - The Larousse Book of Bread Recipes to Make at Home (집에서 프랑스의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을 만드는 방법)을 책을 빌려오게 되었고, 그리고 사워도우 스타터를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워도우 스타터가 완성 된 날 (12월 30일), 배우자에게 책에서 아무거나 딱 하나 고르면 다음 날 만들어주마 했었는데 배우자가 고른건 바로 바게트였다. 


에릭 카이저의 책은 처음엔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디저트류 말고 - 식사용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레시피 북을 찾다가 두툼한 이 책이 눈에 띄어서 빌려오게 되었다. 나는 드라이 이스트로 만드는 간단한 발효빵을 만들 요량이었다. 발효도 해봤자 몇 시간 안에 혹은 치아바타처럼 밤사이 가능한 그런 간단한 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두꺼운 책에 내가 원하는 레시피가 적어도 한 개는 있겠지! 하며 가져왔다. 

집에 와서 이 책의 목록 및 레시피 마다 필요한 재료들을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기며 모두 살펴보니 80가지 모사워도우 스타터 (Sourdough starter)가 필요했다. 사워도우 스타터는 이전에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 스타터를 만드는데만 4-5일 정도 걸리기때문에, 그리고 내가 빵을 만들어봤자 얼마나 만들까 싶어서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레시피대로 빵을 만들려면 꼭 사워도우 스타터가 필요했다. 해볼까 말까를 이틀쯤 고민하다가 - 휴가니까 한 번 만들어보자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리고 신기하게) 이 책에서 제시한 사워도우 스타터 만드는 방법은 - 이전에 다른데서 봤던 것들보다 하루 이틀 정도 짧은 3일 속성 과정이었다. 대신 일반 밀가루에 더해 호밀가루랑 꿀이 필요했다. 집에 호밀가루가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얼마전 집에서 호밀빵을 구웠기때문에 남은 호밀가루 (Rye flour) 가 있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워도우 스타터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Day 1 (첫째날) 

호밀가루 20 g과 물 20 g, 그리고 꿀 5 g을 섞어서 깨끗한 헝겁으로 덮어 따뜻한 곳에 24시간 둔다. (쿠킹 랩으로 공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하게 덮어두어도 된다)  

Day 2 (둘째날) 

첫번째 날 만든 것에 기포가 조금 보일 것이다. 조금 더 큰 용기에 호밀가루 40 g + 물 40 g + 꿀 5 g을 잘 섞은 후 첫째 날 만들어진 것을 여기에 섞어넣어준다.  깨끗한 천으로 덮어 따뜻한 곳에 24시간 둔다. 

Day 3 (셋째날) 

둘째 날 만든 것에는 조금 더 많은 기포가 보여야 된다. 좀 더 큰 용기에 호밀가루 80 g + 물 80 g을 섞고 여기에 둘째 날 만든 것을 섞어준다. 깨끗한 천으로 덮어서 24시간 따뜻한 곳에 둔다. 

Day 4 (넷째날) 

셋째 날 만든 것에다가 다목적용 밀가루 100 g + 물 100 g을 섞어준다. 완성! 


사워도우 브레드를 먹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 사워도우 브레드에는 특유의 시큼한 맛과 향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이 사워도우 스타터에 들어있는 자연효모들 덕분이다. 위의 사워도우 스타터 만들기는 밀가루에 존재하는 자연효모 (wild yeast)가 활발하게 자라도록 유도하는 과정이다.  

일단 사워도우 스타터가 만들어진 후에는 이 효모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 그래서 이 효모들의 먹이가 되는 밀가루를 주기적으로 넣어주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3일에 한번씩 사워도우 스타터 총량의 50%에 해당하는 무게의 물+밀가루를 1:1로 섞어주라고 되어있다. 가령 사워도우 스타터가 총 200 g 이라면 물 50 g + 밀가루 50g = 총 100 g을 섞어주면 된다. 

당분간 혹은 그리 자주 빵을 구울 계획이 없다면 사워도우 스타터를 밀폐용기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온도가 낮기때문에 자연히 효모의 성장이 아주 느려진다. 그렇게 되면 효모 먹이주기 과정인 피딩(feeding)을 좀 덜 자주 해도 된다.  이 책에는 얼마나 자주 먹이를 주라는 설명은 없는데 - 다른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냉장보관하는 경우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먹이주기를 하라고 되어있다. 주의할 점은 밀가루+물을 섞어준 후 2-3시간은 실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으라는 점... (참조: SBS - How to make your own sourdough starter

아주 오래오래 빵 만들 계획이 없다면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할때 꺼내서 실온에서 녹혀서 써도 된다고 한다. 1년 정도까지 냉동보관 가능하단다. 


인터넷에서 유명하신 블로거님들 글을 보면 최소 한두번의 실패를 거친 후 사워도우 스타터 만들기에 성공했다고들 하시는데 - 나는 운좋게 한번에 성공했다.  내 생각엔 내가 한번에 성공한 이유는

 1. 밀가루 대신 호밀가루 사용. 이제까지 읽어본 대부분의 레시피들은 밀가루를 사용하라고 되어있었는데 이 책에선 호밀가루를 사용하라고 했다. 내 생각에 아마 이유는 다목적 밀가루보다는 통밀가루나 호밀가루에 자연효모가 더 많이 들어있고, 그래서 성공확률이 높기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2. 레시피 대로 꿀을 5 g씩 넣어준 것. 꿀은 당분이니까 처음 효모가 자라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3. 실내온도. 이걸 하던 날은 참으로 더운 날들이었다. 효모는 실온 22-26도에서 자란다고 한다. 아마 겨울에 했으면 실패했을지도...



바게트 만들기 

굽기전 

칼집을 살짝 스치듯 내주는데 - 이건 효모들이 만들어낸 이산화 탄소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굴뚝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란다. 칼 집은 시험삼아 내맘대로 호호호.

바게트 굽기

오븐에서 갓 나온 바게뜨 

각 칼집별로 이런 모양이 되는구나 싶어서 무척 신기했다. 그럴싸한 모양에 뿌듯함!!

프랑스식 바게트


만드는 중간 사진은 없고 - 성형 후 굽기 전이랑 구운 후랑 사진을 베이커인 남동생한테 보냈더니 - 빵 중에서 만드는데 가장 오래 걸리고 손 많이 가는 것 중 하나가 바게트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오래 걸렸다. 고로...나처럼 집에서 바게트 만들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걸로.. 생각하고 레시피는 생략. 정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 The Perfect Baguette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레시피로 바게트 만들기는 기다림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 -

  • 밀가루 + 물 혼합 후 1시간 숙성

  • 밀가루+물에다가 사워도우 스타터 + 드라이 이스트 + 소금 넣어 반죽 후 1차 발효 1시간 30분

  • 2차 발효 30분

  • 성형 (모양 만들기) 후 발효 - 1시간 40분

  • 굽기 20분 


계량하고, 반죽하고, 모양 만들고, 식히고, 정리하고 - 6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니까 달랑 3개 뿐이기는 하지만 아주 뿌듯했다. 바게트를 잘라보니 속에 공기 구멍들이 여러가지 크기로 나있고, 슈퍼마켓에서 사는 것에 비해서 속이 꽉 차서 쫀득하고, 사워도우 브레드의 향과 맛이 동시에 낫다. 냠냠냠!! 

집에서 만든 바게트

결론은.... 와인도 그렇고 치즈도 그렇고 빵도 그렇고 맛있는건 다 만드는데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참!!! 그리고 어제야 안 사실이지만 에릭 카이저는 엄청엄청 유명한 프랑스의 제빵사로 그가 거느리고 있는 체인 음식점 (블랑제리인지 확인은 안해봄)이 전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게다가 The Larousse는 프랑스 음식에 대한 백과사전급 시리즈로 아주 유명한.... 그런 책이다. 어제 배우자가 친구랑 페이스타임하는데 - 옆에 있던 나는 책을 들어보이며 바게트 만드는 중이라고 했더니 - 르 코르동 블루를 졸업한 요리에 일가견 있는 그녀는 오우~~~ 하며 놀래더니 그래서 그랬나보다. 


바게트를 다 구운 시간은 늦은 오후라 정작 배우자는 한조각 맛보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챙겨서 같이 새해전야 파티에 가야했다. 바게트는 구운 후로 8시간 이내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데...것 참... 내 노력이 허망하구먼... 그리하여 새해 첫날인 오늘 아침에야 - 감자스프랑 함께 바게트를 먹을 수 있었다. 

직접 만든 바게트가 맛있긴 한데 또 만들만큼 한가한 때가 언제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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