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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일상생활

빈 자리

by 반짝이는강 201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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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는 -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러 근 10년 만에 영국으로 갔다. 나도 당연히 함께 갈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 끝끝내 자기 혼자가겠다고 했고, 별 수 없이 그러라고 했다. 

우리가 결혼한지가 12년이 넘었건만 - 우리는 여전히 서로해 대해 잘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여전히 많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로부터 내가 배우자 부모님의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 외삼촌이 전화를 하셨다. 혹시 우리 관계에 중대한 결함이나 말못 할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걱정을 하시면서 말이다. 그럴만한 걱정이고 염려해 주시는 마음 감사하게 - 생각한다. 

지난 주에 영국인인 Cho가 왔을 때 물어보니 - 문득 자기도 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르러 영국으로 되돌아 가야하면, 자기 파트너인 Noemi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옆에 있던 Noemi에게 그런 사태가 생기면 오지 말라고 하는게 아닌가. 

내 배우자도 그렇고 Cho도 그렇고 - 여러모로 outlier 인건 알고 있었지만 - 범인인 내가 이해하기에는 참... 벅차다. 


어쨌든 간에 배우자 없이 혼자 집에서 지낸지 이제 2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 내가 출장을 가거나 홀로 한국으로 훌쩍 휴가를 간 일은 매 해 있었지만 - 배우자가 이렇게 오래 떠나있는건 손꼽는 일이며, 참으로 오랫만이고, 브리즈번으로 이사오고는 처음이다. 


배우자가 요리를 좀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긴 했지만 - 매일매일 원하는 메뉴만 말하면 뙁~ 하고 아침/점심/저녁식사가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눈 앞에 나타나는 생활을 하다가, 직접 삼시세끼가 아니라 하루 두 끼 만들어 먹으려니 참 벅차다. 

혼자라고 대충 먹으면 또 내가 아니지. 해서 풀 먹고 자란 소고기 (grass fed)도 사다가 구워먹고.... 버섯 파스타도 만들어 먹고, 애호박돼지고기감자고추장찌개도 만들어 먹고....삼계탕도 만들어보고... 어젯밤에는 토마토 소스도 엄청 만들었다. 

​좋은 점이라면 - 좀 과하게 채소를 곁들여 먹는다는 것. 

좀 아쉬운 점이라면 - 2% 부족한 맛이라는 것. 

소금이 좀 들어가야하는데 너무 저염식으로 만들었나? 

배우자에게 일임해두었던 수영장 관리도 하고 있다. 매일매일 pool 펌프 거름망에 쌓인 나뭇잎들을 제거해주고, 수영장 벽 중에 펌프가 닿기 힘든 곳은 녹조가 끼지 않도록 직접 솔로 밀어주어야 한다. 

수영장에 날개달린 숫개미들이 얼마나 떨여져 죽어있는지... 매일 매일 건져내고 있다. 가끔 꿀벌도 빠져있고, 일개미도 빠져있고.... 

결정적으로 수영장 옆 라벤더 위에 잡초나지 말라고 수북히 흝뿌려놓은 사탕수수 지푸라기 (sugarcane mulch)가 어찌나 바람을 타고 수영장으로 날아드는지... 이번에 깜짝 놀랐다. 다음부터는 수영장 옆에 이런 바람에 날리는 것들을 두지 말아야지...

기존에 있던 수영장 스쿱이랑 브러쉬가 오래된 것 같아서 그래서 괜히 힘든가 싶기도 해서 - 스쿱이랑 브러쉬도 새로 장만했다. 

건조한 날씨때문에 수심이 낮아졌길래 일요일에 2시간 동안 수돋물을 보충해 주었는데 - 그래서 이번 주에는 - salt를 사서 넣어주어야한다. 

다음에 집을 산다면 - 꼭 수영장은 없는 집으로 이사가야겠다. 


우리 동네는 월요일에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데 - 아침에 쓰레기통을 도로 옆에 내다놓고, 오후에 빈 쓰레기통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집 안에 있는 쓰레기통들을 모두 비운 후에 - 큰 쓰레기통에 담아서 도로 옆에 내다놨다 빈 쓰레기통을 가지고 들어오는게 은근 시간이 드는 일이다. 배우자는 - 여기에 더해 매주 모든 쓰레기통들을 물로 세척도 했었는데... 


배우자가 없으니까 - 죽은 바퀴벌레들도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어쩌면 평소에는 내가 발견하기 전에 배우자가 먼저 치워서 내가 본 적이 몇 번 없었는지도 모른다. 거미들도 그렇고. 


토요일에는 - 아침 8시 쯔음에 큰 마음 먹고 산책을 나가려고 나섰는데 - 마당에 이런게 보인다. 

내 키 2배 만한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다. 바람 쎄게 부는 날에는 - 이 iron bark 나무 아래에 잘못 서있다가 나무가지에 맞아 죽을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정원 쓰레기 (green waste)로 버리려고 해도 작게 잘라서 쓰레기통에 넣어서 버려야 하는데 - 혼자선 어떻게 움직일수가 없어서 - 톱이랑 도끼를 들고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한참을 씨름한 끝에 겨우 두 토막으로 나눴다. 아직도 여러토막으로 더 쪼개야 한다.  

어젠 난생처음 톱질과 도끼질을 하고 나서 정말 허리가 좀 아팠다. 

여기에 더해 - 50개가 넘는 새로 심은 머라야 하나하나에 물을 주는데 족히 30분은 걸린다. 

이래저래 평소보다 훨씬 오래 서 있어서 다리도 아프다. 


차 열쇠도 그렇고 집 열쇠도 그렇고 - 항상 배우자랑 같이 다니거나, 배우자가 집에 있기때문에 - 열쇠를 꼼꼼히 챙기질 않는데 익숙했었나보다. 그래서 몇 일 전에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문을 다 잠그고 나오는 그런 멍청한 일도 저질렀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면, 배우자는 2시간 마다 차가운 물이든, 쥬스든, 차든 만들어서 가져다 주고는 했는데 - 혼자 집에서 일하고 있으려니,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건조한게 - 수분섭취가 부족한가보다. 


역시... 가끔은 이렇게 좀 떨어져있어봐야 빈 자리가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도 드는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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