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지쳐가던 7월에 9월 초에 한국으로 휴가를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처음 계획은 추석을 껴서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었는데, 추석 바로 다음 주에 시드니에서 2박 3일로 있는 부서 미팅때문에... 회사에 조금 양보하고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휴가를 가는 것으로 수정했다.
물론 직항으로 가면 시간도 덜 걸리고 좋겠지만 - 금액도 중요하고 콴타스 status point도 더 모을겸 - 검색검색 끝에 웹투어를 통해서 콴타스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브리즈번-싱가폴-인천로 갔다가 인천-도쿄-브리즈번을 거쳐 돌아오는 여정을 예약했다.
금요일
정오 즈음하여 브리즈번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저녁에 경유지인 싱가폴에서 도착해서 고등학교 후배와 그녀의 남편을 만났다. 그녀와는 고등학교 때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친하게 지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거의 만난적이 없었다.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리라.
지난 해에는 싱가폴로 출장을 갔서, 당시 싱가폴에 있던 그녀를 근 6년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향후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 이번에는 이제 태어난지 두 달이 된 하늬랑 함께였다.
H야!
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꺼야.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가끔은 지금만 생각하며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그리고… 시간내어 준 것, 맛있는 햄버거 저녁 +집으로 초대해서 refresh 하고 갈 수 있게 배려해 준 것 + 수첩과 펜 선물 모두 너무나 고마워!!
토/일요일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실은 누군가를 기다리다 나중엔 그 누군가의 짐을 내리느라 3시 반이 넘은 시간에 출발)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싱가폴을 출발해서 인천에 도착했는데...연착이다.
공항에서 어머니 댁으로 가는 공항 버스 시간이 그야말로 애매했는데, 때마침 벌초를 가야하는 제부가 동생과 함께 중간 지점으로 마중을 나와서 경상남도에 있는 어머니 댁까지 데려다 주었다. 벌초가는 제부 덕분에 여동생과 어머니 댁에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임신 7개월인 동생은….정말로 임산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도 내 눈엔 허약해보이는 동생인데, 고령 임산부가 되니 참… 힘든가보다.
그런 임산부 동생과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에 쩔은 나를 이끌고 어머니는 일요일 아침부터 우리를 산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숲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금방(?) 돌아왔다.
월/화요일
중학교 때부터 알아오던 친구 M은 나의 방계가족 휴가를 피해 - 촘촘히 계획을 세우고, 기꺼이 내가 있는 곳으로 내가 틈이 날 때마다 와주었고, 그 중 하루는 휴가를 내고는 남해안 관광까지 시켜주었다. 그녀 덕분에 남해안 구경도 하고 - 고등학교 때 몇 번 가보았던 상주해수욕장도 가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가입해 있던 동아리에서는 늦봄/초여름에 봉사활동을 마치고는 상주 해수욕장을 가고는 했었는데 내 어렴풋한 기억 속에 그곳은 햇빛이 쨍쨍하고, 모래가 희고 고운, 그리고 아름답고 행복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내 기억 속 상주해수욕장>
이번에는 비가 와서 그랬는지, 혹은 내가 변해서인지 예전의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M은 - 경상도 아저씨 입맛을 가진 내가 호주에 살면서 먹고 싶었을 한국 음식 맛집들로 나를 안내하며 있는 내내 내 입을 호강시켜주었다. 고맙다!
수요일
남동생이 자기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해왔다. 남동생의 부인은...올케??인가? 이름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호칭은...참...어렵다. 영어로는 상하/남여를 막론하고 그냥 sister in law인데말이다.
남동생 부인 H는 요리를 잘 한다. 웃는 모습이 귀엽고, 여러모로 센스쟁이에다가… 동생과도 잘 지내는 것 같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집에 저녁 먹으러 오라고 초대하는데는 결심이 필요했을텐데...Thank you very much!
역시...남동생에게 H같은 여자는 다시 만날 수 없을꺼 같으니까 얼른 결혼하라고 재촉하길 잘 한 것 같다.
목/금/토요일
어머니와 출산을 약 두달 앞두고 있는 동생네 집으로 향했다. 동생은 내 배우자가 한 요리를 먹고 싶다며 내가 한국에 온다고 정해지자마자 나더러 와서 요리를 해달라고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임신한 동생을 위해 그간 곁눈질로 본 것을 바탕으로 내가 요리를 하기로 했다.
코스트코에 가서 장을 본 다음… 목요일에는 미트볼 스파게티를, 금요일에는 직접 도우를 만들어서 피자를 만들었다. 모짜렐라 치즈 + 토마토 샐러드도 같이 만들껄.
토요일
동생 한약짓는데 따라간 제부가 약값이 생각보다 싸서 덤으로 생애 첫 한약보약을 지어먹고, 그 덕분에 아기가 생긴거 같다는...공주에 있는 유명한 태을한약방에 이번에는 어머니 보약지으러 방문.
<명재고택>
<돈암서원 앞 메밀밭에서>
외출 후 돌아와서 저녁에는 지난 해에 호주에 와서 배우자가 만든 카날로니 (Cannelloni)를 먹고 카날로니 노래(?)까지 부르던 제부를 위해 호주에서 가지고 온 카날로니로...소고기 카날로니를 만들고 모짜렐라 치즈 + 토마토 샐러드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어서 애플파이도 파이지부터 직접 만들어서 한 판 구웠다.
목금토일 - 삼일간의 요리훈련(?)을 통해 먹는걸 만드는게 시간이 많이 들고, 참 다리 아프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사랑하는 사람들과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은 즐겁고 보람차다.
참… 동생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낮기때문에 샐러드 용으로 써야한다. 가열하면 오일이 산화되서 해로운 물질로 변하니까…….절대로 볶음용, 튀김용으로 쓰지 마라.
볶음용으로는 일반 올리브유.
높은 온도의 볶음요리나 튀김용으로는 포도씨유/해바라기유/라이스브란(쌀눈?)유/땅콩유를 쓰고.
유전자 조작 식물의 향후 영향에 대해 알 수 없기때문에 카놀라오일이랑 식용유는 이왕이면 피하도록.
일요일
김천에 있는 고모댁 방문. 점심으론 대구뽈찜을 먹음.
어릴 땐 미쳐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고모랑 고모부는 사이가 참 좋은 것 같다. 지난해에 고모부가 말씀하시길, 첫눈에 고모한테 반해서 열심히 구애작전을 펼치셨었다고.
동생과 제부랑 함께 고모네 밤나무에서 밤도 한가득 따왔다. 똑같아 보이는 밤나무고 밤송이지만, 종류가 달라서 수확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일단 다 익은 밤은 막대기로 살짝 건드리면 툭! 하고 떨어진다. 그리고 발로 부비면 밤송이가 쉽게 벌어져서 밤을 꺼내기도 쉽다.
<동생이랑 제부랑 밤따기>
아빠 산소 방문
큰아버지께서는 꽤나 긴 기간 동안 공을 들여서 선산 곳곳에 흩어져있던 묘들을 한군데로 모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큰아버지 본인과, 작은 아버지, 그리고 내 아버지까지 삼형제와 그 배우자들의 묘자리도 아마 십년도 전에 미리 정해두셨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내 묘자리가 이미 있다는건 어떤 느낌일까?
이번에 산소에 갔다가 비석에 있는 날짜들을 보고, 큰아버지랑 아빠는 12살 차이가 난다는 것과, 생일이 딱 하루 차이가 났었다는걸 발견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년 쯔음이 지났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평생 매우 상반된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빠는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아빠는 어쩌면 큰아버지에게 꽤 많은 의지를 하고 계셨었는지도 모르겠다.
<큰아버지랑 나란히 있는 아빠 산소>
외모에서 아빠를 많이 닮은 남동생은 이번에 보니 핸드폰 바탕화면에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넣어두었다. 나도 남동생도 아빠랑 사이가 그리 좋은건 아니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가끔은 그때 좀 더 잘 해드릴껄...하는 후회가 이제서야 든다.
지금 곁있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가려서 하고, 잘 해야겠다.
Part 2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2019/09/15 -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여행 그리고 미식 노트 ] - 여름의 끝자락 - 한국 다녀오기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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