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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

해외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by 반짝이는강 202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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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제결혼을 했다. 그래서인지, 혹은 요즘은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인지, 주변에도 국제결혼 한 분들이 꽤 많이 있다. 알콩달콩 잘 사시는 분도 있고, 삐걱거리는 분도 있고, 이혼한 분도 있고, 여러 상태를 오락가락 하는 분들도 있다. 이번 해에는 -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을 한 몇몇 지인들과 연락이 닿았다.   

 

지인 1 

이번 해로 넘어오면서던가, 고교 후배인 H가 연락이 왔다. H는 고교시절 나를 꽤 따르던 후배였는데 - 내가 대학을 가면서, 그리고 그 후에는 그녀가 일본으로 가면서 아주 가끔 - 몇 년에 한번씩 만날 수 있었던 후배다. H는 일본남자랑 결혼을 해서 지금은 싱가폴에 살고 있는데 - 약 2년 전에 싱가폴로 출장을 가면서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었고, 지난 해에도 싱가폴을 경유하면서 잠깐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서글서글하면서도 꽤나 섬세하고 귀엽게 생긴 그녀의 남편이랑 함께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호주로 여행을 왔다. 아니 - 호주로 여행을 왔다기보다는 나를 만나러 우리집에 다녀가면서 호주도 구경하고 간다는 말이 맞으려나? 보통 호주로 여행을 오면 시드니나 멜버른으로 가기 마련인데, 그녀는 브리즈번으로 들어와서, 우리 집에서 5일을 보내고, 시드니는 아주 잠깐 스쳤다 돌아가는 일정으로 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이전에 나고야에서, 싱가폴에서 내게 큰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또한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따라주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나도 보답을 하고 싶었던 터라 그녀가 (외진 곳에 있는) 우리 집에 와도 괜찮을지 물어와서 매우 반가웠다. 

일본에 오래 산 그녀와 일본인인 그녀의 남편은 - 매우 예의바르고, 혹시라도 우리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매일 아침 저녁을 배우자랑 내가 준비를 했었는데 - 둘은 우리가 매일 직접 요리하는게 많이 부담스러웠는지, 두번 째 날 저녁에 자기네가 저녁을 한 번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류해야 했었다. H야 - 말만으로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내 지인들 중에 우리 집 와서 그런 말 한건 니가 처음....이라 매우 고마웠음. 대신 H랑 H의 배우자는 아주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리를 호강시켜주었다. 매일 밤 와인과 맥주는 덤!

그녀가 도착할 때 큰 타올 4장과 작은 타올 3장을 욕실에 두었는데, 그녀 부부는 큰 타올은 2장만 쓰고, 작은 타올은 전날 모두 세탁을 해두고 떠났다. 둘째 날 아침 - 전날 저녁 샤워하는 소리가 시끄럽지는 않았냐며, 샤워를 할 때 뜨거운 물은 조금 쓰고, 빨리 끝내려고 노력했다는 그녀의 말에 - 우리집은 낮에 태양열로 뜨거운 물이 공짜로 만들어지니 햇빛이 쨍쨍한 날은 뜨거운 물은 걱정하지말고 쓰라고 말해주었다. 그녀와 그녀의 배우자에게서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 문화적인 차이라고 해야하나... 항상 깍듯함과 배려가 묻어나서 유쾌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H의 8개월 된 아기도 함께 왔었는데 - 아기가 거의 울지도 않고 너무 순해서 정말 신기했다. 앞으로도 한 동안 눈에 밟힐꺼 같다.  

 

 

지인 2

고교 친구이기도 한 E는 (아마) 독일 남자랑 결혼하고,  독일로 가서 정착을 했나보다. 고교생활 중에 1년을 꼬박 옆에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간 후로는 그녀와 만난적도, 연락을 해본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많은 이들을 다시 연결시켜주는 페이스북 덕분에 - 그녀와 친구를 맺고, 근근히 올라오는 피드를 보며, 그녀가 한때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한 때는 일본에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하고, 지금은 독일에 사는걸로 알고 있다.  

유럽에 사는 사람인 만큼 - 유럽 나라들을 여행한 사진을 자주 올리던 그녀가, 12월인가, 1월인가 어디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다녀온 후, 다음 여행지를 호주로 정했다고 페이스북에 선언을 했다. 그 포스팅을 보고 속좁은 나는 반가운 마음 반 + 어쩐지 주저하게 되는 마음 반이 들었고 아무런 댓글도 달지 않았었다.

그러다 2월로 접어들자, 그녀에게서 페이스북 메신져로 연락이 왔다. 호주에 여행을 올 예정인데 - 만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녀는 내가 시드니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브리즈번에 살고 있다고 했더니 - 브리즈번도 지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일단은 만날 수 있다고 답은 했는데 뭔가 개운하지가 않은 느낌이다.  배우자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왜 그러냐고 묻는다. 

나: E는 성격이 나랑 굉장히 비슷해.

배우자: 그런데?

나: 그게 문제야. 나처럼 염세적이고, 비판적이고, 가끔 비꼬기도 하고, 아무튼 unpleasant 한 성격이야. 

배우자: 와하하하하하. 이제야... 니 성격이 unpleasant 하다고 인정하는구나...! 

그녀와 나는 웬만한 한국 사람들보다 직설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건 못견뎌하고, 그래서 가끔은 무례한... 아마 꽤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들인건 맞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녀의 방문이 반갑게 다가오지만은 않는 이유는... 최근 몇 년 간 보아온 그녀의 페이스북 포스팅들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함들이 묻어났기때문이다. 축적된 불쾌함에 대한 반감이랄까? 그녀를 꼭 가까이서 접하고 싶지는 않은...그런 마음이었다.

어쨌든 - 그녀가 브리즈번에 오는 날짜도 정해졌고, 그녀에게 우리 집에 와서 머물러도 좋다는 말도 해두었다. 근 이십년이 지난 지금... 그녀를 다시 만나면 어떨까? 

 

지인 3

몇 일 전에 <배우자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어요. 다시 깨어나게 기도해주세요.> 라는 메세지가 왔다. 이 분은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서, 스페인에 살고 있는 분이다. 연락이 왔을 때 H가 우리 집에 와있던 때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고, 시차도 있기에 오늘 저녁에야 잠깐 시간을 맞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콘서트 장에서 만나기로했는데 - 남편이 오지 않길래 처음엔 조금 늦어지나 보다 했단다. 나중에 알고보니 - 그녀의 배우자는 콘서트장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지 얼마되지 않아 길거리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5일이 지난 지금까지 혼수상태라고 했다. 배우자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최근에 배우자에게 쌀쌀맞게 대한게 평생 마음에 걸릴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좋을지 모르겠다며 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스페인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당장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있을만큼 원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그 배우자 하나 보고 혈혈단신 스페인으로 갔는데... 그 배우자가 이렇게 갑자기 죽음의 갈림길에 있다는 현실은, 그녀에게 세상이 무너진다는 선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 달려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 주고 싶은데... 이럴 땐 호주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는 곳 같다.  모쪼록 그녀의 배우자가 기적처럼 멀쩡하게 깨어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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