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안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슈가 되고, social distancing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한창 사재기를 하던 때였다. 슈퍼에 가면 빵도 없고, 밀가루도 없고, 통조림 식품도 없고, 파스타도 텅텅 비어있었다. 사람들이 식료품을 사러 슈퍼에 가는 것 조차도 상당히 꺼리게 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때 페이스북 동네 커뮤니티에 아래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지난 해에 한창 집에서 사워도우 브레드를 구워대다가 - 어느날 내 스타터에 불순물이 유입되었다고 생각되어서, 전량 폐기하고, 그 후로 빵 만들기를 중단한 상태였다. 사워도우 스타터 만들기는 이미 해봐서 하면 되는건데 - 정작 생각만큼 잘 하게 되지 않더라는...
2019/07/05 -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요리 와인] - 사워도우 스타터 (Sourdough starter) 만들기
2019/06/30 -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요리 와인] - 사워도우 브레드 (Sourdough bread) 만들기
2019/06/04 -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요리 와인] - 사워도우 브레드
그래서 자기가 6년 동안이나 키워온, 이름을 "베스티" 라고 붙인 사워도우 스타터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이 분의 포스팅을 보자마자 love 버튼을 눌렀다. 사워도우 스타터를 나눠받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아시안에 대한 반감>이 있을까봐 선뜻 달라고... 요청하는 댓글을 달기가 쉽지 않았다. 몇 일 사이에 - 사워도우 스타터를 나눠받은 사람들의 댓글들이 수두룩 달렸고, 이 분은 사워도우 브레드를 어떻게 굽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한 비디오(?)도 찍어서 페이스북 그룹에 올려주었다. 이웃들이랑 잘 지내고 싶어하고, 나누는걸 즐거움으로 삼는 분 같아서 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If you dont mind, I would like to have some please!> 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다음 날 아침 페이스북 메신져로 연락이 왔다.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며,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사워도우 스타터는 오전 9시에 집 앞 우체통 근처의 에스키 (esky - 아이스박스)에 넣어둘테니 편할 때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나에게 줄 사워도우 스타터를 준비하며 - 주방 작업대를 한번 소독하고, 손 씻고, 장갑도 끼고, 감염방지를 위한 모든 수칙을 따랐다는 말과 함께.
토요일 아침 - 집에서 10분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 걸어서 이 분 댁으로 향했다. 우체통 앞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마당에서 소일을 하던 이 분이 나를 발견하고는 - 내 이름을 부르며 에스키에 있으니 가져가라고 한다. 이 분이 <감염 방지를 위한 수칙을 따랐다고> 알려주셨기에 나도 미리 준비해 간 비닐장갑을 꺼내서 끼고, 이 분 에스키에서 사워도우 스타터를 꺼내, 가져간 에스키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자세히 보니 - 우리 부부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를 발견하고 얼마되지 않아 한창 집 보러 다닐 때 매물로 나와있던 것 중에서 내부가 아주 우하하고 멋진 집이 있었는데 - 그 때 그 집을 산 분이 이 분이었네? 지금은 granny flat을 짓느라 준비중인데 -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주식시장이 폭락해서, 자금 줄이 말라서 언제 첫 삽을 뜨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베스티라 이름 붙여진 이 분의 사워도우 스타터를 살펴보니 - 일반 밀가루가 아니라 통밀 혹은 호밀가루를 써서 배양한 사워도우 스타터다. 일단 사워도우 스타터를 먹이줘서 부피늘리기! 요즘 실온이 25도 쯤 되기때문에 아주 적합한 온도다.
(살균을 위해) 뜨거운 물에 잠깐 담궜다가 물기를 제거한 유리병에다가 사워도우 스타터를 담고, 사워도우 스타터: 물: 밀가루 = 2:1:1의 무게 비율로 섞어 넣어준다. 이렇게 섞은 것이 부피가 두 배가 되면 - 스타터의 증식이 최고조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 사용하기에 딱 좋은 상태가 된다. 실내온도에 따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릴수도, 혹은 덜 걸릴수도 있는데 - 요즘 같은 날씨에 2-3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집에 있는 다목적용 밀가루 450 g과 통밀가루(?)로 생각되는 밀가루 50g 을 섞어서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포피씨드 (poppy seed)도 1 테이블 스푼 넣었다. 오랫만에 만드는 빵이라고 - 작업대에서 손으로 한 참 늘리고~ 접고~ 늘리고~ 접고~ 해줬더니 반죽도 잘 되었고, 도우도 아주 마음에 들게 잘 되었다.
오븐에다가 베이킹 트레이를 넣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오븐에 수증기가 가득차게 해 준 다음에 - 오븐과 함께 예열된 피자 스톤에다가 준비된 도우를 올려서 50분간 구워서 완성!!
오랫만에 빵을 구웠는데 - 그간 만들어본 빵 중에 정말 괜찮은 빵이 탄생했다. 내 입맛에도 맛있고, 배우자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렇게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게 내 맘대로 되느냐고...이 기세를 몰아서 이참에 사워도우 브레드를 부풀릴 때 쓰는 - 동그란 모양이 나올 수 있는 바네통 (banneton)을 하나 사볼까보다. 그런데... 어디 가서 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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