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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살이

갑작스러운 소식

by 반짝이는강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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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 전에 이전 직장 동료 J한테서 연락이 왔다. 브리즈번에 1박2일 출장을 올 예정인데 시간이 어떠냐고.

직장생활하다가 고민이나 갈등이 생기면 항상 간단명료한 답을 제시하며 나의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는 J. 6월에 시드니에 갔을 때 일정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게 못내아쉬웠는데, 그녀가 브리즈번에 온다니 꼭 만나지 싶었다. 


그런데....이번 학기의 virtual class가 있는 날이랑 겹친다. 파트타임이지만 꽤 진심으로 공부하고 있기에 보통의 경우라면 약속을 거절하고 수업에 들어갔겠지만, 요즘 커리어가 ceiling에 봉착한 것 같은 답답함도 있는데다가, J라면 안만날수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 학기 강사는 매주 수업을 녹화해서 온라인에 바로바로 올려주기에 수업을 째고 J를 만나기로 했다.

브리즈번강 야경

J랑 만날 생각에 신이 나서 버스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하는데, J한테 연락이 온다. 이번 출장을 같이 온 직장동료 2명이 더 있으니, 같이 만나도 괜찮겠느냐고. 부랴부랴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에 전화를 하니, 오늘 저녁에는 4명을 받아줄 수 있는 테이블은 남아있지 안다고 했다. 

우여곡절끝에 미리 예약한 곳은 취소를 하고, J가 새로운 곳 그릭레스토랑 Greta를 예약했다. 


그렇게 4명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 J의 일행 2명은 9시부터 참석해야하는 본사와의 미팅이 있다고 먼저 자리를 뜨고, J와 나 둘이서 바로 옆 Felons에서 맥주 한잔을 더 할 수 있었다. J랑은 가족끼리도 만난적이 있고, 알고지낸지도 이제 10년이 넘는지라 서로의 가족들, 직장생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최근에 집에 걸려있는 모기지 다 갚았다며 - J가 시원하게 맥주를 쏴주었다. 

브리즈번 펠론스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어찌하다보니 이 날 낮에 배우자는 전신 CT 촬영을 했다.

내 평생 MRI는 두 번 찍어봤지만, CT를 찍을 일은 없었다. 그래도 CT 스캔을 할 때 조영제를 정맥주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걸 배우자에게 말해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모르고 가서 당황하는 것보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는게 낫겠다 싶어서 조영제 주사에 대해 말해주니, 주사바늘이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극심한 공포가 있는 배우자는 - 혹시라도 자기가 CT 찍기도 전에 실신할지 모르니 CT 스캔을 하는 곳에 동행해 달라고 했었다.  

배우자는 병원 가는걸 극도로 꺼리고, 본인이 느끼기에 그리고 판단하기에 생명이 위독한게 아니면, 절대로 병원에 안가는 사람이다. 호주에 오고 내가 줄곧 사보험을 내왔지만 치과는 무섭다며 한 번도 안간 사람이 배우자다.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GP를 직접 예약해서 만나고 오고, 조영제 정맥주사를 맞아야함에도 CT 스캔을 하러 가는걸 보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운틴 꾸타의 보타닉 가든

한국 기준으로 보면 호주 의료시스템은 참 느리다. GP (general practioner - 1차 진료)를 만나야 하는 것도 보통은 몇 일 전에 예약을 해야하고, 스페셜리스트 예약을 잡는건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검사를 한 경우에는 - 특별한게 없는 경우에는 보통 1주일 안에 전화로 결과를 알려준다.

그런데 - 배우자가 CT를 찍은 다음 날 아침 8시도 채 되기 전에 GP 가 있는 메디칼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긴급한 상황이니 그 날 당장 메디칼 센터에 방문하라고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GP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주겠다고 했더니 - 배우자는 한사코 혼자 가겠다며 거절을 했다. 

대나무숲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온 배우자.

암이라고 했다. 

배우자는 "암"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의학적 지식이 없는 평범한 일반인 인지라 내가 원하는 것들은 말해주지는 못했다. 배우자가 메디컬 센터에서 받아들고온 referral letter와 CT 스캔 결과지를 받아들고 읽어보았다. 

흉부에 종양 조직이 5cm 이상인게 하나..

크기가 작아 사이즈를 명시하지 않은 것들이 하나, 둘, 셋...

그리고 보통 주먹만한 콩판에 주먹만한 암덩어리가 하나...

 

종양연구 CRA로 일하며 CT report는 수도 없이 봐왔던지라 - 읽는 순간 전이가 있는 Stage 4 암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통제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GP의 권고/요청으로 다음 날 배우자와 함께 오전에 GP를 만났다. 환자와 배우자의 정신적 충격을 감안해서 궁금한 것은 없는지 배려해서 잡아준 미팅 같았다.

어제 배우자에게 소식을 전한 후 담당 GP는 배우자를 비뇨기 전문의에게  refer해둔 상태였는데, 그 전문의가 이 케이스는 자신의 능력 밖의 복잡한 케이스라며 다른 비뇨기 전문의를 추천한 상태라고 했다. 그쪽으로 refer를 해도 될지 우리의 동의를 구한 후, GP는 해당 비뇨기 전문의와의 예약을 잡아주겠노라고 약속을 했고, 우리는 메디칼 센터를 떠났다. 

나에게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혹은 공감능력이 별로인 내가 잘 인지를 못한 것인지, 배우자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지 않은가보다. 메디칼 센터를 나오며 - 배우자는 날씨도 좋고, 또 일주일 후에는 자신의 상태가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아직 기력이 있을 때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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